1/48 Bf109-K4 Erich Hartmann.
2015-08-07, HIT: 5710
이승훈, 노란대문외 81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노선익
하세가와제 1/48 Bf-109 K4 입니다.
큰사진으로 보고 싶으신 분께서는 번거롭더라도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길.
이곳에 가셔서 사진을 클릭하시면 더 큰 사진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roisonic/220444304489
슈퍼에이스인
에리히 하트만 소령의 최후의 전투기로 제작해 보았습니다.
모형으로써는 Bf-109기종중 인기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이론상으론 Bf-109기종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기체입니다.
이 에리히 하트만 기체는 언젠가는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피일피일 미루다
이제서야 한번 만들어 보게 ‰營윱求
이 양반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접하게 된게 약 23년전 공군에 입대하여 정훈교재를
통해서 처음 알게‰榮기억이 있습니다. 총 격추 352대라는 엄청난 기록을 가졌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계실터 처음에 그 정훈교재에 352대라는 제목을 대충봐서 아마도
352대대(소속명칭)의 영웅...뭐 이런식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양반의 얘기에 대해서는 국내외 매체에서 상당히 다뤄졌기에 더 얘기하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이 양반의 대한 얘기들중 가장 기억이 남는 얘기가 하나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그다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작된 이 기체와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만, 이 기체가 체코에서 마지막으로
출격하여 소련의 Yak기 1대를 추가 격추시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 연합군 점령지역
으로 탈출했다고 하는데 이때 탈출했을때 의 에피소드입니다만,
기체의 정비원 5명을 자신의 기체에 같이 태워서 탈출했다고 하는데 양쪽 날개에 각 1명씩
(아마도 로프등으로 묶었을것으로 생각됨)자신의 앞에 1명, 뒷부분에 1명,후방 무전기실에
무전기를 제거하고 그곳에 1명등 모두 5명을 그렇게 태우고 탈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필사적으로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의해 소련군에게 다른 부대원
들과 함께 그렇게 넘겨지고 그후의 얘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 생략하기로
합니다.
다만, 이 기체가 그때 탈출했을때 썼던 기체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군요.
기체 도장에 관해서
사실 이 기체의 도장이 정말로 하트만의 최후의 기체의 도장이냐, 하는 문제인데
파인몰드의 1/72키트를 보면 그 기체의 도장은 이 기체와 전혀 다르다. 하세가와와 파인몰드
둘중의 하나는 틀린것이라는 얘기인데 인터넷에 뒤져봐도 파인몰드의 기체 도장의 일러스트나
사진은 찾아볼수 없었다.
다만, 이 기체의 도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트만이 포로생활 이후 서독공군에
복귀했을때 자신의 F-86 기체의 도장이 이 기체와 같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최후의
기체의 도장을 세이버에 적용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불후의 명작이냐 돈으로 매수한 최악의 기체냐....
Bf-109에 관해서는 워낙 알려진 것이 많아 이런저런 얘기가 그다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느낀대로 말해보면 기체 체용당시 이 기체가 고위관료들을 매수해서
체용된 기체라는 설이 많았고 훈련이 부족한 파일럿이 몰기에는 어려움이 많고,결함도 많다고
알려져있기도 하다. 그러나 , 전 형식 합 32000대라는 숫자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만
폄하할 기체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항공사들도 로비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도 그렇게 결함이 없었던것도 아니다.
다만 , 생각해보면 전쟁때 쓸 무기가 그렇게 뒷돈에 의해 좌우될 그런 환경이었다면
당시 독일은 처음부터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을 환경은 아니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나치 정권이 탄생된 과정 자체부터 본다면 그 환경 자체가 뭔가 융통성있게 돌아갈 환경이
아니였을 것이고. 자신네들이 자기고 있던 자원이나 환경과 그 한계는 그 단 한번 실수해도
그것은 돌이킬수 없이 치명적일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다 망해가고 있던 때에서 조차도 무기제작사들은 고위관료들에게 로비하기 여념이 없었으며
그런 환경에서는 에리히 하트만과 같은 인물이 100명 더 있었다고 한들 전세를 뒤집을수도
없었을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독일은 전쟁에서 이길수 없었을 것이다.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와 하트만이 항상 비교대상이 되는것 같다.
한스는 훈련이 잘된 영국공군을 상대로 자신만의 신기에 가까운 비행실력으로 상대해왔던
반면에 하트만은 기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련군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격추수를
낼수 있었다고들 알려져 있다.
대충 한스 이 사람의 기동법을 들은 바로는 기동중 좌석 좌측의 플렙휠을 돌려 플렙을
내리고 스로틀 또는 프로펠러 가변피치를 이용하여 급격히 속도를 줄인후 조종간을 당겨
마치 제자리에서 기수가 들리게 하여 급히 턴하게 만드는 곡예에 가까운 기동을 하였다고 한다.
(요즘 말하면 플렝커의 코브라 기동이나 후크기동이 바로 이 기동에서 유래‰榮鳴본다.)
그러나, 당시 한스 자신의 애기는 F2,4형 이었는데 이후의 G2형은 엔진출력이 높아진 만면
기체무게가 300Kg이상 늘어나 있었다 . 과연 그후에도 그 신기에 가까운 기동을 펼칠수 있었을까?
설령 가능했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실속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점점 숫적으로 늘어난 적군에게 언젠가는 당했거나, 다른이들처럼 정공법(?)을
사용해야 했을지도 모를것이다.
참고로 지금의 K4형의 무게는 약 3.3톤으로 F형 보다도 400Kg이 더 무겁다.
물론 속도는 630Km/h에서 710Km/h까지 늘어났다.
반면 하트만은 거의 교과서 적인 정공법(?)전술에 충실했다.
적의 출현 방향 예상, 탐지후 유리한 위치선정. 이런식으로만 작전하였고 시력이 좋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 적의 출현 예상방향을 탐지하는데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고 대다수의 편대원들이
증언했다고 한다.
전쟁 막판에는 영국기와 미군기합 7기를 격추시키기도 한것을 보면 그가 결코 기량이 낮은
소련기라서 격추대수가 많았다 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 2번의 격추로 인한 불시착기록도 있고 운좋게 체포당한 상태에서 탈출에 성공한 예도 있다.
Bf-109에 대해서 조금 얘기하자면.
Bf-109는 철저하게 작은 기체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서 기동성을 높인다. 라는 개념의 전투기이다.
작은 날개에도 롤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슬렛을 설치한것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무장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F형에 들어서서 스피너 가운데에 MG151/20mm모터케논을
설치하였다. 대신 양날개의 MAGF20mm기총을 제거했는데 이를 들어 갈란트 처럼 항공기술의
퇴보라며 항의한 이도 있었지만 헤르만 그라프 처럼 명중률이 높아지고 기동력이 좋아졌다고
반긴이도 있었다.
그러나, G2에 들어서 DB-605엔진으로 인해 출력이 좋아진 만면 무게가 늘어 기동력이
형편없어졌다며 전투기로써의 가치는 이제 죽었다.. 라고 혹평한 고든골롭 같은 이도 있었는데
하트만은 철저히 앞서 얘기한 철칙만 지켰기 때문에 어떤 기체라도 크게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K4에 들어서서는 출력이 P-51과 상대할수 있었을 만큼 좋았기 때문에 P-51도 상대하는데
문제가 없었을것으로 생각한다.
Bf-109의 무장에 대해서 이런 의문점을 가진적이 있었다.
잘 아시다 시피 미군기는 Cal'50.기총을 다수 장비하여 다탄으로 탄막을 치는 전법을 사용했다.
반면,독일기는 20mm 전쟁막판에는 Mk108 30mm기총을 장비하였는데 20mm는 어느정도 이해가 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포구속도,사정거리도 낮고 장탄수도 적은 Mk108 30mm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의문점이 최근에 마지막으로 생존하고 있는 태평양 전쟁때 제로센 파일럿
의 증언을 듣고 나서 풀리기도 하였다.
앞서 거론했지만 , 미군은 구경이 낮아도 위력이 충분한 Cal'50.으로 다탄을 날리는 전법이지만,
일본군과 독일군은 단 한발에도 박살내는 20mm의 강력한 펀치 한방이었다. 그러나, 이 기관포는
장탄수가 많지 않아 정확히 맞추려면 적과 20m까지도 접근해서 맞추지 않으면 탄만 무의미하게
소모할 뿐이었다고 한다. 그 20m 거리에서 적 파일럿이 뒤를 돌아보게 되면 그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자신이 격추한 파일럿의 얼굴이 자주 떠올라 괴로웠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전쟁이란것은 역시 승자에게도 괴로운 기억을 남기는 인류의 최대의 죄악인듯 하다.
위와 같은 얘기라면 Mk108의 성능이라도 근거리에서만 사용했을 것이고 공중전에 쓰는데도
문제는 없었는듯 하다. 다만 30mm의 위력은 폭격기를 상대하는데 유용했을듯 생각한다.
패전으로 양산이 좌절‰瑩嗤양쪽 날개에도 30mm기총을 추가로 장착한 K6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루프트 바페는 종전 직전까지 폭격기 요격에만 급급했던듯 하다.
하트만의 경우는 자로 잰듯한 정확한 항적과 사격으로 늘 적은 탄으로 적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어떤때는 단 5발 정도로...
연료탱크는 네오듐자석을 사용하여 착탈이 가능하도록 개조되어 있습니다.
가변피치 프로펠러의 피치변경의 모습, 하세가와 셈플작과 본작품의 비교 기수정형에 역점을 두었다.
콕피트는 K4사양에 맞게 디테일업 해주었다. 케노피는 개폐가 가능하다.
좌석 벨트,전면 방탄유리,갈란트 판져도 자작하였다.
러더와 벨런스 텝도 가동된다.
(트림텝이 절대 아니다.러더에 가해지는 저항 반대로 힘을 주기 위한 텝이다.)
그밖에 라지에이터 입구 열린상태, 오일쿨러 후방 도어의 열린상태 개조,브레이크라인 추가,
렌딩기어 아웃도어에 디테일을 추가 하였다.
콕피트 후방의 MW50커버는 실기의 디테일을 확인 하지 못하여
G10의 사양과 일반적 사양을 선택할수 있도록 하였다.
마치며,
앞서 얘기했지만 이 하트만이라는 양반을 처음알게 된게 군에 입대한 해였는데,아이러니 하게도
그 양반이 세상을 타개 한것이 바로 본인이 그 양반을 처음 알게된 그해 였다는게 묘하게 느껴지
기도 합니다. 히틀러 앞에서도 권총무장을 한체로 있겠다면서 나 못믿겠으면 훈장따위는 필요없다
라고 개긴 그 배짱은 참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출격후 자신의 부대원과 함께 미군진영에 탈출하고 나서 자신의 기체를
불태워 버렸다고 하는데 전쟁이 계속 진행중 적진이라면 맞는 행동이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 태워버렸어야 했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신의 신념에는 철저한 반면 사람으로써의 융통성이 지나치게 결여‰榮것은 아니었는지....
분명 그의 기체는 기념비 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자본주의 적인 생각을 해본다면 그 기체로
자신이 소련에 넘겨지지 않도록 뭔가의 카드로 쓸수 있었을지도 있지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이 옳다고 느껴지는것에 대해서는 위의 같은 배짱이 필요도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상황에 맞게 융통적인 사고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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