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Hasegawa Bf109-G6 Gerhard Barkhorn JG 52. Sep. 1943
노선익
2015-11-25, HIT: 4330, ghostgrey, 이컴외 113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하세가와제 1/48 Messerschmitt Bf-109 G6 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슈퍼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에 이어 301기의 격추기록을 가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최종계급 소령)의 탑승기입니다.
1943년 9월 JG 52 소속으로 러시아 전선에서 활약했을때의 (당시 대위 당시 22세) 기체를 재현했습니다.

더 큰 사진을 보고 싶으신 분께서는 번거로우시더라도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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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naver.com/rois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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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알생긴 청년이 바로 바르크호른입니다.
하르트만보다 1세가 더 많고 고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잘 기억해주지 않는 2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에 관해서는 격추왕인 하르트만 전술 이론가인 갈란트와 묄더스
천재 조종사인 마르세이유등에 비해 생각했던것 보다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는것 같다.

301기의 격추기록은 하르트만의 352기에 이어 2위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르크만의
그늘에 가려진 감도 있다. 그렇다고 위에 언급한 인물들에 비해 뭔가 특출난 부분이 있는것도
아니기도 하고 단지 격추대수만 많은 파일럿으로 보여져 당사자는 억울한 감도 있을것 같다.

실제로 백엽검 기사 십자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전쟁의 혼란으로 인해
수여받지 못한체 그대로 전쟁이 끝나기도 했다.

이사람이 전술은 극히 단순하여 도그파이팅을 즐겨했다고 한다.
비행기술이 뛰어난것임은 분명한데 기량이 떨어지는 소련 전투기와의 교전으로 세운 기록이라
마르세이유 만큼의 명성은 없는것 같다.

그러나, 하르트만보다도 250기의 격추기록을 먼저 세우는등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단한번의 피탄 격추로 인한 부상으로 5개월간 복귀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복귀이후 Fw-190 D9,
Me-262를 탑승하기도 했다. 부상만 당하지 않고 기종전환도 하지 않았더라면 하르트만보다도
더 많은 격추기록을 세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르트만이 2번의 피탄격추를 당한 데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복귀했던것에 비해 조금 불운하다고 할수 있겠다.


사실 이번 하세가와 키트의 제작이 불로그에 소개하지 않은것까지 하면 5대째이다.
이쯤되니 눈감고 키트의 완성상을 그릴수 있을정도가 되었다.

이 바르크호른의 탑승기는 하세가와에서 2000년에 특별판으로 발매한적이 있다.
한국에도 수입‰獰駭쩝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소 케릭터성이 있는 하르트만과
헤르만 크라프의 기체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도장이 아닌데도 이들 두사람의 탑승기 보다도
더 휘귀해진것 같다.

발매지인 이곳 일본도 야후 옥션에서 누가 내놓은 물건이 일반판보다 2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 기체를 완성해보니 내 아내가 말하길 .....
이전의 하르트만과 그라프에 비해 실전적 도장이고 전투기 같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들 기체의 앞의 튜울립 도장이 생각보다 멋진게 아니었던것 같다.
키트의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 헤르만 그라프의 탑승기의 제작기고문에 충분히 언급했지만
조금 더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전에 후지미나 에듀아르드의 비교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후지미에 비하면 좀 날렵하다.
후지미는 동체 날개 케노피 몰딩이 좀 부풀어 보인다. 프로펠러도 좀 이상하게 보인다.
다른 사양과 공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분할이 좀 많은것이 보인다.

그에 비해 하세가와는 다른 사양키트를 생산하기 위한 공통화를 최소화 하여 확실한 구성을
하는것 같다. 다만 금형의 한계상 분할된 엔진 상부는 동체에 깨끗히 결합하려면 다소 경험이
필요한것 같다. 기총덥게 벌지와 타이어벌지도 다소 과장되어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G6의 특징을 어필하는 적당한 과장이 된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제작사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쁘게 과장되었다고 보인다.


에듀아르드는 이전에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스케일에 관한 부분인데 전체 길이과 폭이 1/46정도의
크기로 사이즈에 오류가 있다. 거기에 케노피도 두꺼워서 열린상태로 만들면 다소 두께가 신경쓰인다.

부품구성을 보면 F,G2,G10형의 부품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차후에 출시할것으로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출시하지 못하는것을 보면 환상적인 디테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것 같다.


본 작품은 기본마크를 제외하고 모두 스텐실로 처리했다. 바르크호른 기체데칼은 먹고 죽을려고
해도 찾기 힘든것 같다. 다만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조금 신경써주면 어렵지 않게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케노피는 가동식으로 개조되었다

시트벨트는 종이와 전선가닥으로 대충 만들었다. 그래도 흔한 에칭파트 보다도 실감나 보인다.
칵핏 뒷부분의 사물함의 몰드도 플라판으로 제작하여 붙여줬다.

이 Bf-109모델은 다른 기체에 비해 에칭을 쓰지않고 플라판으로 자작하여도 그다지 떨어지지는 않는것 같다.
사실 별매 에칭의 구성을 보면 구색 맞추기식 억지구성도 꽤 있는것 같다. 어떤메이커의 별매기총도
보면 13mm기총이 20mm급 기총의 두께를 하고 있어 쓰잘데없이 자원만 낭비하는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있는 구성만으로도 조금만 손보면 충분히 좋은작품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벳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톱니기어로 어렵지 않게 하였고, 라지에이터 입구를 열린상태로 개조하였다.
라지에이터 플렙을 좀더 얇게 갈아내고 내부의 몰드도 추가 하였다. 후방의 생략된 라지에이더도 플라판으로
대충 만들어 붙여줬다.

이 라지에이더 플렙부분은 국내외의 에칭업체가 출시한적이 있는것 같은데(형식은 달라도 같은 파트임)
에칭의 리벳몰드도 톱니기어로 재현한 리벳과도 매치가 않되고 에칭자체를 부착하는데도 플라스틱보다도
어렵고 지져분해지기 쉽고 색칠도 잘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 모 업체물건은 값도 비싸기만 하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것 같다.

러더 역시 가동식이다.


네오듐 자석을 이용하여 연료탱크와 20mm기총팩을 착탈이 가능하도록 개조하였다.
실기고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냥 한번 이렇게 만들어 주는것도 나름 재미있는것 같다.



마치며.

이 기체가 앞서 언급한것 처럼 하르트만이라든가 그라프의 기체에 비해 별로 그다지 특출나 보이지도 않아
이 모델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다가 대전당시의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조금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는데 ,

그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아마도 이 기체를 운용했던 시기로 생각되는데 소련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여 격추시킨 직후 추락하고 있는 소련기의
옆에 다가가 낙하산탈출을 망설이고 있던 소련조종사에게 기체에서 탈출하라고 여러번 손짓을 하였는데 그것을 본
그 조종사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비로써 탈출했다고 합니다. 낙하산이 펼쳐진것을 확인한 바르크호른은 그대로
기지로 귀환 했습니다 .

당시 같은 대대소속이었던 하르트만이 그냥 쏴 버리지 왜 살려보냈냐 라는 그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길..
" 그 친구도 자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러시아 여인이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확실히 인간적인 인성의 소유자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그의 기체를 만들고 싶다고 여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살다 보니 자신의 욕심을 위해 남에 대한 배려도 없고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 등치고 불행까지 이용하려는 뭣같은 인간도 있는 반면
자신이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그런 인간적 냉정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인간성을 떠나서
가히 낭만적이라고 보입니다.

전후 재건된 서독 공군의 소장계급까지 달고 퇴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66세가 ‰榮1983년 봄 퀼른근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동승자였던 그의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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