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Focke-Wulf Fw190 D-9 JG 6. Major.Gerhart Barkhorn.
2016-05-22, HIT: 3378
윤대한, 유진우외 54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노선익
이전의 머스탱처럼 랜딩기어를 제외한 완전가동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좀더 큰 파일로 보고 싶으신 분께서는 번거롭지만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길....
http://blog.naver.com/roisonic
탑승자인 바르크호른 소령은 워낙 유명하고 이전에 Bf109G-6를 제작할때 논한적이 있어서 간단히만
말하자면,부상으로 5개월간의 병원신세를 마치고 배속되어 탑승하게 된것이 바로 이 Dora-9이고 이 기체로
최종격추 201기째를 기록하고 나서 격추행진은 마감하게 되었다. 후에 1달간 Me 262를 탑승하게 되지만
격추기록 없이 그대로 종전을 맞이했다고 한다.
가동부 펼친상태
가동부를 닫은 상태
이 기체 제작의 목적인 케노피 가동화 제작.
개인적으로는 이것으로 모든부분을 가동화 할수 있는 기술적인 숙제의 완성으로써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케노피의 안테나 와이어는 나일론에 테이프 접착부를 락카신나로 녹여 발라주어서 늘어뜨릴때 동체에 달라붙게
하였다.
에일러론,플렙,러더,엘리베이터 모두 가동된다.
엔진 카울링은 부품 교체식으로 개폐선택을 가능하도록 했다.
타미야 키트의 재발견.
요즘 1/48 Dora 9 키트는 타미야제 외 Hobby Boss제와 Eduard제도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도 어졌고
품질도 우수해져 어느것이 더 낫다 라고 딱부러지게 말하긴 어렵지만 타미야제가 이들 두가지 메이커
에게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말한 두개의 메이커는 랜딩기어베이 안쪽의 엔진부를 재현하고 있어 그것이 생략된 타미야에 비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타미야제에 비해 리벳팅 표현이 더 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델러들의 선호도가 확실히 쏠려있기도 하다.
그럼, 타미야제는 이제 쓸모 없는 키트인가?....이걸로 Dora 9을 만들면 바보인것인가?.....
솔직히 본인도 이 키트를 손대기 시작할때 대충만들어 떨이 처분하거나 이전에 A5/U12를 제작했을때
실패했던 케노피 개폐가동개조의 가능성을 실험해볼 심산으로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파고 들면 들수록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수 있었다.
일단, 이전의 트라이마스타제의 D-9과 앞서 말한 두 메이커의 키트에 비해 타미야제는 실기의 날렵함이
잘 표현되있다. 그리고 ,사이즈가 정확하다. 앞서 말한 세 메이커제는 폭과 길이가 1-2mm정도 더 길다.
이는 이들 메이커들의 오류나 설계미스라기 보다는 의도적인 볼륨과장표현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하세가와제 A시리즈도 날개폭이 실 스케일보다 2.5mm 정도 더 길다.
일전에 다른 작품 기고때 Eduard제 키트에 대한 평에서 힌바 있지만,이 메이커의 강점으로 꼽히는
리베팅 표현이 생략된 다른 리베팅을 표현하게되면 기존의 리벳팅 몰드와 어울리지 않게 되는
리스크가 있다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이 Dora-9 도 그 문제를 피할수 없다.
이 작품의 첫째 목적이었던 케노피 가동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실험으로 살펴본 것이지만 ,
이 기종은 케노피가 뒤로 후퇴될때 레일을 따라 안쪽으로 오무라 드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Eduard키트는 그 오무라든 케노피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외의 메이커제는
닫힌상태만 만들던가 본인이 이전에 제작한 A5/U12 처럼 철심을 심던지 해서 강제로 오므라들게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타미야 케노피로 이전에 실패했던 가동화 개조를 실험해본 결과 케노피 한개를 깨먹고 나서 답을 찾아
결국 실현에 성공했다. 결국 내친김에 모두 가동화로 개조하게 된것이다.
사실 지금 Eduard A5키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같은 방식으로 케노피 가동화를 실험 해봤지만 플라스틱의
재질 문제로 케노피에 다수의 실금이 가고 말았다. Dora 9이라면 갈란트 하우베라는 부풀은 케노피의
공간적 여유 때문인지 아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Eduard 의 갈란트 하우베 케노피로 가동화
개조 작업 한다면 그다지 아무런 문제는 없을것이다.
타미야제는 타이어 사이즈에 오류가 있다. 다만, 랜딩기어 커버의 위치를 좀더 올려놔서 타이어의 노출이
다른 메이커 보다 많기 때문에 완성후에 보면 그다지 티는 안나는것 같다. 랜딩기어 베이에서 보이는
엔진 후방부에 대한것은 배면으로 보기전엔 보이지도 않으니 알아 할일인것 같다.
키트평에 대한 결론은 .....
본인처럼 뭔가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던가 아님 타사키트에서 타이어나 랜딩기어 커버등의 남는부품등을
유용할수 있다면 이 타미야제 키트도 나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한국내의 타미야제 가격이면 조금 더 주면 다른 메이커제를 구입할수 있기 때문에 일부로 구입하기를
권할일을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느것이 더 낫다에 대한 문제는 결국 자신의 취향에 따라 결정될것이라고 본다.
이 기체에 관한 개인적인평...
그냥 한번 주절해보자면.....
이 기체는 2년은 먼저 나와야 했거나 아님 처음부터 아에 나오지 말았어야 될 기체로 생각한다.
이 기체에 관한 기록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적기와의 교전비등의 독일측 자료가 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있기 때문에 생대해본 연합군 파일럿들의 보고자료와 이 기체를 몰아본적이 있는 독일측
파일럿들의 증언만으로 판단할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기체 성능적으로 보자면 결코 실패작은 아니다.
일전에 A5/U12기 제작기에 혔듯이 Fw 190기종이 전비만 까먹은 기체라고 표현했단 이유가 다름아닌
바로 이 기체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Bf109의 보조기로써 개발을 시작했던 것이 제2의 주력기종의 야심으로 시작된 기체는 결국 보조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Bf 109를 능가하는 기체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냉식 기체로 시작했던 Fw 190은 1943년을 기점으로 자신들이 상대해야 했던 적은 중폭격기와 더욱 발전된
연합군 전투기였다. Bf 109는 DB-605 엔진의 안정적인 성능에 힘입어 고공으로 침투하는 연합군 폭격대에
대해 비교적 효과적인 요격을 행하고 있었지만 Fw 190 시리즈는 BMW-801엔진의 고공성능 저하로 인해 털털
거리기 일쑤였다.
(참고로 그 당시 A5기체에 MW-50 파워 부스터의 장착실험을 하기도 했지만 공냉식 엔진의 특유의 구조로
인해 엔진수명이 급속도로 단축되어 비 경제적이라는 결론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에 대비해서 포케블프사는 1942년에 이미 액체냉각방식의 기체를 개발해 뒀지만 1943년부터 시작된
알프레드 슈페어 장관의 전비절약 프로잭트로 말미암아 돈없으니까 거기까지만 해 !...라는 말 한마디에
거기서 진행이 중단되었다.(실제로는 Bf 109의 주력자리를 넘기위한 야심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그 시기에 Bf 109 G-6는 13000여대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제작될수 있었다. 물론 Fw 190 A-8도
8000여기라는 많은 숫자가 만들어지기는 했다.
1944년 후반에 들어서서 연합군의 폭격에 피해가 극심해진 독일측이 망하기전 발악이라고 표현할 상황이
된지라 마지못해 Dora시리즈의 개발을 허락하여 그제서야 개발된것이 바로 이 기체이다.
그러나 , Bf 109는 K시리즈가 활약하기 시작하여 이 기체는 전쟁이 끝날때 까지도 이 기체를 능가하는
상승력,속도를 가진 기체를 만들지 못하고 종전을 맞이하고 만다.
Bf 109에 비해 튼튼한 골격과 여유있는 설계로 인해 파일럿들에게는 대체적으로 호평이었지만, 제작비가
비싸고 장착된 유모 213엔진은 DB-605엔진에 비해 같은 출력에 비해 무게도 무겁고 부피도 컷기 때문에
Bf-109에 비해 불리한점이 많았다.
그럼, DB-605엔진을 장착하면.....이런다면 간단하겠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은 이 DB-605엔진의 생산량이
달려 Bf-109에 우선적으로 공급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포케블프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수 없이
유머 엔진을 사용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 메사슈미트사의 로비로 인해 그렇게 다는 설도 있지만 연합군측의 P-51에 사용되는 페커드 멀린
엔진도 공급이 달려 당시 개발되고 있던 다른기체 ( 대표적으로 XP-60과 XP-58등이 있다.결국 P-51의 성능에
밀리고 제트기 개발로 개발이 중단됨)에도 제한적으로 공급던 사례를 본다면 당연한 조치라 본다.
이 Dora 시리즈도 마지막까지 완전하지 않아 종전직전때 까지도 계속 개량작업을 했던것을 본다면
포케블프사가 생각한 제2의 주력이라든가 아님 Bf 109를 능가하는 주력을 만드는 데는 독일의 전비 상황과
전황을 본다면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주력을 Bf 109에 맡기고 그냥 대량생산이 가능한 값싼 전투기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이유도 바로 그렇다. 당시 슈페어 장관의 조치가 아니었어도 잘해봐야 Bf 109 G-6보다 나은 전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수 있다.
그나마 Bf 109의 최종 시리즈라고 할수 있는 K시리즈도 폭격으로 인해 1년 늦어지고 그것이 양산될때쯤
바로 이 기체가 나왔다는 것을 본다면 처음부터 독일의 제정의 주머니 사정을 넘는 기체였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을것이다. 이둘 기체의 상승력과 최고속도가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다용도성과 전과 쉬운 조종/정비성과 여성의 각선미가 연상되는 날렵함은 모델러들의
주머니를 털 자격(?)이 충분히 있는 멋진 전투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메서슈미트사와 포케블프사는 선의의 경쟁을 넘어 아에 서로를 망하게 하는것이 목적이 아니였을까 싶을 만큼
한심한 경쟁을 종전직전까지 해댓는데 그 증거로 Bf 109에도 공냉식 버젼인 X 형이 존재 했다는 것이다.
보조 전투기 시장 마저 그들 메서슈미트사가 넘봤다는 얘기다. 이 역시 슈페어 장관에 의해 개발이 중단다.)
포케블프의 케노피는 사진과 같이 후퇴시 케노피가 안쪽으로
오므라 든다. 케노피 2개를 깨먹고 나서 기술적인 완성을
보았다.
안전벨트는 종이와 전선가닥으로 제작하였다.
에듀아르드 부품을 이용한 타이어. 자잘한 부품류도 가급적 디테일 업을 해주었다.
내부의 엔진은 아이리스제 엔진의 등장으로 낙동강 오리알 된 벨린덴제를 사용했다.
보조연료탱크는 네오듐 자석을 이용하여 착탈이 가능하다.
바르크 호른 소령과 그의 부인 크리스틀 전시때이지만 단란했던 가정을 가진듯 하다. 말년의 바르크호른 82년 봄 그의 부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마치며,
이번에도 역시 실험적 시작으로 출발했지만 나름 의미있는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Eduard 키트 역시 언젠가는 제작 해보겠지만 개인적으로 완벽한 기체를 만든다는 생각한다면
역시 이 방법을 다시 택할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전에 P-51기체의 케노피 가동기술까지 동원하여 엔진 카울링까지 가동되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제가 살고 있는 이곳 일본의 큐슈지방에 큰 지진이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제가 살고 있는
이곳 후쿠오카시는 전혀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도 4정도의 지진을 직접 겪어 보니 무섭기는 하더군요. 그리고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 다음날 수퍼마켓에 가보니 비상 식량이 될만한 것들이 거의 다 사라지다 시피 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쉽게 구할수 있던 것들이 어느날 구하기 애먹을수 있는 상황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던것 같습니다.
정말로 범사에 감사함이란 것이 이런것 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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