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서 50대의 중장년 모델러라면 모형 점에 대한 추억 한두 개는 있을 것 같다. 학교 앞 문방구에 전시된 조잡한 프라모델부터 쇼윈도에 매달려 침을 질질 흘리게 했던 모형 점의 멋진 프라모델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프라모델을 만들고 좋아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그런 추억을 현실로 만들어줄 장소를 찾아 떠났다. MMZ에서 인상 깊은 디오라마를 자주 보여주고 계신 이원섭 님의 모형점, “하비힐”이 바로 그곳.

대구에 위치한 하비힐은 이쁘장한 모노레일을 타고 이름도 귀여운 “건들바위”역에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만나게 된다. 입구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마징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원섭 님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 모형 점에 들어서면 상상했던 좁고 모형 박스로 꽉 찬 모형 점이 아닌 넓고 쾌적한 공간을 갖춘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대구 사투리가 구수한 이원섭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대구 3호선 건들바위역에 내리면 하비힐을 바로 찾을 수 있다.

 하비힐은 널찍한 공간에 모형들이 전시된 공간 중간중간에 이원섭 님의 디오라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작업 책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회원제로 작업실도 같이 운영하고 계신다고... 정기적인 강좌도 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단순한 모형 점이 아닌 복합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단 모델러 이원섭 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하비힐에 대해서도 들어 보기로 한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만나는 모델러라면 늘 질문하는 모형 생활의 시작과 계기 말씀해 주십시오.

> 1990년 초반 고등학생 당시 집 앞 작은 모형 점에서 키트를 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 모형 붐은 대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몇 군데 모형 점이 생겨났습니다. 그때는 돈이 없던 학생인지라 모형 점에서 눈치 보며 구경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소프트비닐 키트나 레진 키트들도 드물게 들어와서 현혹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는 고등학생 시절이라 눈치 보며 타미야 에나멜과 캔 스프레이를 뿌리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내 유일의 모형지 취미가를 접하면서 편집장이셨던 이대영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모형에 눈을 뜨고 제작 기사를 따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처음 샀던 타먀야 M48 전차와 드래곤 인형들 그리고 모노그램 베트남 인형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형과 관련된 제품들이 넘치는 시대지만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은 지금은 다시 느낄 수 없는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모델러가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호비스트 편집장이셨던 이대영 선생님, 벨린덴 그리고 존 그란트입니다. 벨린덴의 120mm 인형들에 감동하여 구매했던 기억도 있는데 요즘은 국내외 모델러들의 실력도 좋고 멋진 작품들도 많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지금의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MMZ 올려 주시는 작품도 그렇고 주로 베트남전 아이템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형 쪽에서 베트남전 소제는 주류라고 보기는 어려운데요, 특별히 이 소재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 저는 모형도 좋아 하지 만 원래 서바이벌 게임을 매우 좋아하고 지금도 즐기고 있습니다. 군장도 베트남전 아이템을 좋아하고 모형 역시 베트남전 소제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AFV, 에어로, 건프라도 관심을 가지는 편입니다. 별로 접해보지 못한 장르는 배입니다.

주로 디오라마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제작 동기와 제작 방법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처음에 디오라마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샵을 하면서 무엇인가 전시할 모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작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계속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은 주로 샵에서 하고 생각하고 제작을 완료할 때까지 길어야 1~3주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제작 기법은 좀 옛날 방법을 사용하는데 락카로 밑칠을 하고 에나멜로 워싱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모형점안에는 이원섭님이 지금까지 작업한 디오라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업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인형 중에는 자작 인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저는 일단 시작하면 몰아치며 만드는 성격이라 보통 1-3주 안에 작업을 끝냅니다. 인형은 부분적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아예 원형을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작업은 어디서 하시나요? 작업대를 구경해도 될까요?

> 작업은 주로 모형점에서 합니다. 별다른 작업대 없이 테스크위에서 작업합니다. 환경은 최악이네요 ^^

 보통 방문전에 작업대를 깨끗히 치우는 경우가 많은데 작업 상태 그대로라 자연스럽습니다^^

> 오신다고 해서 치운겁니다. ㅡ.ㅡ;

모형점 이야기를 해 보죠. 요즘은 오프라인 모형 점을 보기가 상당히 힘이듭니다. 모형점 운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모형점 창업은 9년 전 개인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해 보고 싶은 일을 해 보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는 이미 오프라인 모형 점들이 사라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인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
사실 이 업종에 관련된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국내에 몇 곳을 제외하고 모두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비관적인가요? 그러나 즐거움이 더욱 크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

하비힐 전경

 대구 경북 지역에 모형 점이 별로 안 남았지요? 특히 스케일 모형은...

> 네, 아마도 스케일 모형을 위주로 하는 모형 점은 대구 경북지역에 제가 유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이전에 대구에 스케일 모형 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업한 상태입니다. 근처 지역에 모형점이 없어서 그런지 대구 이외 지역에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작업실도 같이 운영하시는 것 같습니다.

> 네, 회원 위주로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또 방문하시는 분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료 강좌도 열고 있고요. 모형점 안쪽에는 별도로 작업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형 점안에 같이 마련된 작업실, 5-6명이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규모

MMZ 회원들과 모델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계신다면?

> 여기 지역 모형 계는 건프라 일색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아주 아쉽습니다. 스케일 모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분들도 요즘 스케일 모형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보여서 진입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형이란 취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즐거움이기 때문에 제가 그것에 일조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온라인은 MMZ와 카페 몇 군데, 오프라인에서는 운영 중인 샵에서 자주 모이는 회원들과 친목과 교류를 하고 있는데요, 같은 취미를 가진 분들과 교류하며 즐기는 것은 모형이란 취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오랫동안 모형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MMZ 회원분들도 즐기는 모형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짧은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이원섭 님의 배웅을 받으며 하비힐을 내려왔다. 왔던 길을 거꾸로 돌려 돌아오면서 하비힐은 모형점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하비힐을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따뜻한 커피 한잔과 모형 점의 추억을 될돌려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