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한 '미드웨이 해전(일조각)' 이 출간되고 4개월 만에 영화 '미드웨이' 가 개봉되었습니다. 처음 번역을 시작할 때인 2017년에는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얼추 비슷한 시점에 같이 나오게 되었네요. 작은 우연입니다. 

영화는 세 번 보았습니다. 남다른 의미를 가진 영화라 같은 영화를 세 번 본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실력이 미천한데다 다른 분들께서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셔서  전반적인 평은 삼가하겠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나니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을 타겟으로 어떤 전달방법을 택해야 할지,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과감하게 설명을 생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간단하게나마 부연설명을 많이 해서 관객의 이해를 돕는 방법이 있는데, 감독은 후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자체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빠른 템포로 진행시키는 사건들의 연속임을 고려하면 이 접근방법이 오히려 관객의 머리를 더 어지럽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더 좋은 접근법을 말해보라고 하면 저도 딱히 좋은 답을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숙제를 나름 성실하게 해결하려 했는데 결과가 노력을 따라가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네요. 

소재 자체가 미국 국뽕을 한 트럭 가져다 부어도 괜찮은 소재이지만 이 부분에서 상당히 자제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아마도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이 일정 역할을 한 듯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미국에서 흥행실패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극장판 'Battle 360' 을 보고있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까요. 

고증과 관련해서는 영화적 전개를 위한 축약, 왜곡, 과장은 일부 있을지언정 기록과 너무 동떨어진 부분은 없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잘 펴보지 못했지만 대본의 전반적 내용은 'Pacific Payback(S.L Moore, Penguin, 2014)*', 'Battle of Midway(C.Symonds, Oxford, 2011)'** 'Shattered Sword(J. Parshall, A. Tully, .Potomac Books, 2005)'**를 많이 참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주만에서부터 마셜제도 공습까지는 'Pacific Payback'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거의 그대로 영상에 등장합니다(다만 마셜제도 공습장면은 어째서인지 왜곡이 좀 심한 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 관련장면은 'Shattered Sword'를 많이 참고한 것 같은데 특히 히류와 야마구치 다몬의 최후는 책의 묘사장면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양군의 작전 전개상황은 'Battle of Midway' 와 'Shattered Sword'(그리고 다른 문서들도 있었겠지만)의 기술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픽이 조잡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 방면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인지, 눈에 거슬릴 정도로 어색해 보이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역사물에서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이 정도 결과를 냈으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점과 미진한 부분이 공존하는 영화이지만 '운명의 5분' 묘사장면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같다고 이 장면을 혹평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가 내려가면 이 장면을 큰 스크린과 압도적 음향을 동원해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습니다.  

---------------------

* 진주만에서 미드웨이까지 엔터프라이즈 탑재 SBD 탑승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 입니다. 

** 'Shattered Sword'가 일본군 관점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풀어냈다면 'Battle of Midway' 는 미군쪽에서 본 해전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