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침 나홀로 집에 상태가 된 틈을 타서 별려오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50ml중 1/4정도 남아있던 레벨링 신나로 스프레이 도색한 부품의 색을 벗겨내는 거죠. 락앤락 통 하나에 부품 넣고 신나를 부은 다음에 뚜껑 닫고 쉐킷쉐킷... 처음에는 아주 잘 됐죠. 역시 기막히게 벗겨지더군요. 작년에 락커 도색 벗겨보겠답시고 세제 푼 물로 시도했다가 망했던 아픈 기억이 씻겨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쯤해서 물로 씻고 처리했으면 끝났을 것을,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첫번째는 남아있던 신너의 양보다 더 많은 부품을 벗겨내려던 것이고, 두번째는 런너 도색한 상태였고, 세번째는 뚜껑을 닫지 않았던 것이고, 네번째는 런너 도색할때 캔 한 개를 다 써버릴 정도로 두껍게 칠했다는 걸 잊어버렸던 겁니다. 그러니 어찌되겠습니까. 잘 벗겨지던 통 안이 그만 진흙탕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최악의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신너 냄새로 맛이 가버린 건지, 물을 부어버린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결정적으로 또 미친 짓을 저질러버렸으니 바로 얼마 안남은 에나멜 신너를 부어버린 겁니다. 부품들이 아직 안바스러진 것만 해도 다행스러울 지경인데, 결국 레벨링 신나와 녹다남은 입자와 끈적끈적한 도료가 묻은 부품을 담고서 끔찍한 화학물질이 다 된 통(...)을 들고 또 오밤중에 삽질하게 생겼습니다. 냄새가 지독해서 신너 덜고 조금씩 벗겨서 닦고 말리는 방법은 못씁니다. 안그래도 지독한데 통을 닫아버렸으니 뚜껑을 여는 순간... 더 끔찍한 건, 이 사고로 부품들이 바스러지지는 않을지 매우 걱정된다는 겁니다. 이 부품들은 가뜩이나 구하기 힘든 코토부키야 킷 중에서도 레어 취급을 받는 1/144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게슈펜스트Mk2 개량형들의 부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품들이 바스러지면 전 망한 겁니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바보짓으로 말이죠. 심리적 대미지가 꽤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전에는 에나멜 신나를 들이부었던 적이 있었죠. 옛날 메인보드에 불이 나서 PCI슬롯을 태워버린 이래 플라스틱이 쿠크다스처럼 바스라지는 꼴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래도 괜찮았어요 HGUC 육전형 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건은 안그래도 재판 안찍고, 모종의 사정으로 진짜 부르는 게 값이 될 지경인 물건입니다. 공포에 떨고 냄새에 경악하고 있습니다. 야외에서 신너 처리하는 것도 머리아프지만, 얼마전에 제대로 감기에 걸려서 생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부디 행운을 빌어주세요. 가능한 빨리 후속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역시 뭘 하든간에 성급하게 굴면 안되는군요.

아참. 1/72 아카데미 그라울러의 날개 가공은 봐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원... 그래서 날개 하나 해먹고, 친절한 다른 분께서 공여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또 망칠까봐 손도 못대고 있습니다. 무서워요... 그냥 밑판 하나 따로 찍어주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