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이번이 아버지 없이 맞이하는 두번째 추석이네요. 자식이 나이가 들어 부모를 여의는 일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이지만 저에게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시간들은 언제나 2%이상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었습니다. 혼자 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먹고 사는 일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기는 커녕, 연락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서 바쁜 척만 하며 살아가고 있네요..... .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어버이 날 이야기를 적은 글 입니다.
어제가 어버이 날이었다. "하이퍼 리얼리즘"를 생활 모토로 삼는 아내는 어버이 날을 각자 부모님을 찾아뵙고 챙겨드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아내는 친정으로, 나는 본가로.... 그런데 3월부터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관계로 차량 이용 문제가 발생했다. 처가와 본가 모두 경인 지역인데 특히 본가는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쥐약인 곳이다. 레이디 퍼스트 원칙에 따라 아내에게 차량이용권을 주고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본가로 향했는데 카톡 문자가 왔다. 대학 입학 이후 고3 수험생에서 '하숙생 모드'로 변신한 딸내미에게서 온 문자다.
" 나 집 가서 밥 먹음."
평균 귀가시간이 자정 전후인 녀석이 왜 하필 오늘 저녁을 집에서 먹겠다는 건지 의아했다. 답을 보냈다. 오늘 어버이 날이라 아빠 엄마 모두 집에 없을 거라고. 그랬더니 녀석은 집에서 자기 혼자 뭐하냐고 투덜댄다. 학원에서 동생이 돌아올 테니까 같이 놀고 있으라고 말했다. 다시 답신.
"나도 우리 어버이 보고 싶은데...“
결국 딸내미도 어버이날이라 나름 자식도리를 하겠다고 일찍 오겠다는 모양이다. 다시 답신.
"아빠 엄마도 아직 자식이기도 함“
차 없이 본가에 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딸내미는 이렇게 문자를 마무리 한다.
"오늘 내로 볼 수 있는 거야?“
지하철 타고 공항철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본가에 도착하니 딱 두 시간이 소요된다. 광역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이 단축되지만 퇴근길에는 정원초과로 탑승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부모님 뵙고 카네이션 드리고 저녁 푸짐하게 먹고.... 가는 길은 탑승거부가 없으니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데 딸내미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쯤 본가에서 출발할 거냐고 묻길래 지금 버스 정류장이라고 말했다. 딸내미는 자기가 준비한 게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한다. 그런데 외진 동네에 늦은 시간이라 버스가 함흥차사이다. 30분 가까이 기다리니 간신히 버스가 왔다.
딸내미는 케익과 샴페인 한 병, 그리고 편지를 한 통 준비했고 초등학생 아들내미는 학교에서 만든 카네이션과 역시 학교에서 쓴 편지 한 통을 준비했다. 딸내미가 케익에 초를 두개 꽂길래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더니 아빠 엄마가 부모된 지 20년을 기념하는 의미란다. 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30분. 아비이자 아직도 자식이기도 한 나는 하루 종일 자식으로 어버이날을 보내다가 30분을 남겨두고 아버지로서 어제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어버이날은 자식으로 지내는 게 훨씬 익숙하다. 내년도, 내후년도 자식으로서 어버이날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