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스탈린 그란드<도망쳐!>
블랙 짜짜로니
2020-11-14, HIT: 685, a320 파일럿, 블루에스키외 9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을 앞두고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나치 독일과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의 소비에트연방(소련)은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독ㆍ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며 소련을 침공, 조약의 파기와 함께 '독ㆍ소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로 인해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등 추축국(樞軸國) 동맹군에 대항하는 미국ㆍ영국ㆍ프랑스의 연합군이 소련을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 사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이 집권한 뒤 1925년 '차리친(Tsaritsyn)'에서 '스탈린그라드(Stalingrad)'로 개명되었다. 특히 캅카스 지역의 유전지대를 연결하는 주요 석유 공급로라는 이점 때문에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했던 히틀러는 스탈린의 이름이 붙여진 스탈린그라드를 차지함으로써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1942년 7월 17일부터 시작된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독일군의 제6군 사령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Friedrich Wilhelm Ernst Paulus, 1890~1957)는 33만 병력을 투입, 600대의 폭격기로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여 민간인 사망자만 4만여 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초반 유리했던 전세와 달리 독일군의 전차부대는 소련군의 기관총부대에 비해 시가전에서 취약하였고, 전투가 장기전에 돌입하자 소련의 혹한의 날씨를 견뎌야 했고 군복과 식량 등도 점차 고갈되었다. 그해 11월부터 소련군의 반격이 이어졌고, 결국 독일군의 무기 보급로까지 차단되면서 22개 사단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당했다. 후방 부대의 지원 병력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독일 제6군은 2개월간의 치열한 저항 끝에, 1943년 2월 2일부로 소련군의 공세에 항복하였다. 히틀러는 포로가 되기 전에 자결할 것을 종용하는 의미로 사령관 파울루스를 원수로 승격시켰으나, 결국 파울루스가 항복하면서 스탈린그라드전투는 소련군의 승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독일군은 22만여 명의 전사자와 9만 1000여 명의 포로가 발생했고, 추축국 동맹군(이탈리아군ㆍ루마니아군ㆍ헝가리군)도 30만 명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이때의 독일군 포로 중 생존자 6000명만이 1955년 독일로 송환될 수 있었다. 또한 소련군은 47만 8000여 명이 전사하고 65만여 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총 110만여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이로써 전쟁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와 포로, 민간인 피해를 유발한 전투로 악명이 높다.



한편 스탈린그라드전투로 심각한 전력 손실을 입은 독일군은 이후 1945년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탈린그라드전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이이야기를 듣기전에는 무슨공산국가끼리 전쟁을하나 믿지안았는데 독소전쟁 스탈린그란드 전투가 존재했네요!

작업내용:우드락 건물자작/led 직렬설치/노란색 하이라이팅/솜 연기/눈표현제 타미야 스노우 이펙트/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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