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야 보파이터를 생전 처음 조립해 보았습니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보파이터라는 기종의 디자인이 참으로 동글동글하다는 겁니다.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았을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전체적인 윤곽도 동글동글하지만, 기체 구석구석 동글동글한 부분이 넘쳐납니다. 설계한 사람들이 곡선에 대단히 집착했던 모양입니다.
둘째로, 타미야 관계자들이 보파이터와 사랑에 빠졌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키트의 품질이 좋다느니, 만들기가 편하다느니 따위의 서술로는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메이커 측에서 보파이터에 진심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구성입니다.
저는 걸판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소년병'을 연상시키는 설정을 알고 나니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군요. (온갖 고어 장면이 난무하는 애니는 잘도 보는 주제에...) 하긴 지금 일본의 인구 구성이, 만약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면 어린 학생들까지 탱크를 몰아야 하는 구성이기는 하죠.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없지만요.
그러고 보면 어린 주인공이 로봇이라는 '중장비'를 타고 지구를 멸망시킬 만큼 무시무시한 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옛날 애니의 흔한 설정이 다시 곱씹어보면 조금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습니다.
동글동글에 매료되어 Meng의 타이타닉을 이어서 만들었습니다. 토리팩토리의 별매 레진세트를 적용했습니다. Meng의 SD 함선 시리즈의 품질이야 말할 나위도 없이 훌륭하지만, 토리팩토리 제품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선수와 선미의 파도 부품과 난간 부품이 함선과 딱 맞아주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아마 요즘엔 이런걸 3D 프린터로 뽑아내나 보죠? 난간 게이트가 가시나무처럼 복잡하게 붙어 있어서 제거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동글동글 하면 계란비행기를 빼놓을 수 없죠.
하세가와의 계란비행기는 데칼 품질이 들쭉날쭉한데, 이 제품은 다행히 품질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곡면에 복잡한 데칼을 붙이느라 마크소프터와 면봉을 들고 한참 어르고 달래가며 붙여야 합니다. 유튜브 틀어놓고 소리만 들으면서 작업하면 그리 지루하진 않습니다. (무슨 상담소 소장인가가 나와서, 4~50대 남성 여성들의 잠자리에서 환영받는 비결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더군요. 왜 제가 그런 동영상을 들으며 작업했는지는, 오히려 제가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둘 다 자위대 60주년 기념마킹이라는데, 위의 녀석은 어쩐지 할머니들 집에 많이 있는 꽃무늬 홑이불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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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제한 풀리자마자, 제 직장에서도 바로 식당 예약을 잡네요.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