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미군 기갑 전문가 중 하나인 스티브 잘로가가 2002년 Military Modelling magazine에 게재했던 글을 제가 번역한 것으로, 이전에 타 커뮤니티에 먼저 올렸다가 이왕 번역한 김에 여기에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올리브 드랍’

스티브 잘로가 저

‘정확한’ 색상에 대한 스티브 잘로가의 고찰. 2002년 Military Modelling magazine에 게재

 

최근 본지에서 어떤 도료가 2차대전 미군 올리브 드랍 색상을 가장 잘 재현했는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필자는 이 주제에 관한 몇 가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몇 년간 자료들을 뒤적여 왔다. 따라서 이에 대해 기고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올리브 드랍이 아닌 색들

올리브 드랍이 어떤 색상인지를 논하기에 전에, 올리브 드랍이 아닌 색상을 말해보고자 한다. 모형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실수 중 하나는 2차대전 미군 전차를 다크 그린 계열로 칠하는 경향이다. 이는 수많은 그림들이 미군 기갑차량을 다크 그린 계열로 묘사한 데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 출시된 타미야 구금형 스튜어트, M4A3 셔먼 등은 이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근원은 훨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Profile publications의 오래된 여러 자료집들, 그리고 그 후에 출간된 서적들조차 2차대전 미군 기갑차량의 색을 다크 그린 계열로 나타낸다. 이런 오류 중 대표적인 것이 1930년대 전간기까지는 위장색이 다크 그린이었다가 전쟁 발발과 함께 올리브 드랍으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예를 들어, 미군 기갑 색상에 대한 권위 있는 고전 자료집 중 하나인 테렌스 와이즈(Terence Wise)의 명저 ‘American Military Camouflage and Markings 1939-1945’ (1973년 Almark에서 출판)에는 다크 그린 320 (역주 - 군제 320번 다크 그린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 색상으로 칠해진 M3 리가 등장한다. (필자 역시 이 오류에 지분이 있다. 유감.) 과거 Squadron Signal books에서 발매한 것과 같은 다수의 대중적인 모형 자료집 역시 미군 기갑을 다크 그린으로 나타냈다. 요약하자면, 다크 그린이나 다크 올리브 그린은 전간기와 2차대전기 미군 기갑차량에 적합한 색상이 아니다. 미군 차량의 색상은 올리브 드랍이었지 올리브 그린이 아니었다.

올리브 드랍의 역사

올리브 드랍은 1차대전 이전부터 미군에서 사용되었다. 올리브 드랍이 Pullman사의 상업용 열차 색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둘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공식적인 사료를 보지 못했다. 올리브 드랍은 온대 기후의 흙과 나뭇잎 색의 중간쯤에 해당했기에 많은 국가에서 군용 표준 색상으로 도입되었다. 1918년 11월 11일(역주 - 1차대전 종전일) 발표된 미국 원정군(AEF) 사령부 고시 90호에서 올리브 드랍은 전술차량의 표준 색상으로 지정되어 2차대전 이후까지도 사용되었다. 포트 녹스의 패튼 박물관 큐레이터인 찰스 레몬스(Charles Lemons)에 따르면 1차대전기의 보급 올리브 드랍은 꿀꿀이죽 색깔, 즉 아주 탁한 올리브 브라운이었다. 이 시기의 올리브 드랍은 1917년 병참대(the Quartermaster Corps) 교범 3964항에 정식으로 규정되었다. 도료에 사용된 안료는 아주 간단했다, 검정색, 그리고 황토색.

빠진 것이 있다면 상용 도료의 배합에 사용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색상 규격표였다. 따라서 1920년, 미 육군은 미 육군 표준 색상 24종에 올리브 드랍을 포함한 규격서 3-1을 발간했다. 규격서 3-1의 올리브 드랍은 전시 보급된 색상보다 어두웠고, 이 색상이 2차대전 이후까지 표준으로 유지된다. 시간이 흐르며 도료는 바뀌었지만, 기본 규격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해당 기간동안 내내 미 육군 기갑차량들은 “공식적으로” 동일한 무광 올리브 드랍으로 도색되었다.

전간기에 다양한 원인의 문제점이 튀어나왔다. 무광 마감으로 인해 올리브 드랍 도료는 쉽게 벗겨져 흠집투성이가 됐고, 평화로운 시기에 장교들은 꾀죄죄한 모습의 장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육군의 행정차량들은 유광 올리브 드랍으로 마감되어 칙칙하고 때묻은 전술차량보다 훨씬 말쑥했다. 그 결과 많은 부대에서 관습적으로 전차를 유광 혹은 반광으로 도색하거나 표면에 광택재나 목공용 바니시를 발라 평화로운 시대에 더 어울릴 법한 외견을 좇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에 사용된 도료의 두 번째 문제점은 건조 시간이 너무 길어 고르게 바르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도료가 오래 가지 못하고 바래기 일쑤였기에 부분 재도색을 한 차량들은 새로 도색한 부분이 눈에 띄어 허름해 보였다.

때 빼고 광 내기에 환장한 이들의 압력으로 인해 미 육군 병기국(the Ordnance Department)은 1935년, 더 빨리 마르고 내구성이 강한 유성(에나멜)도료의 연구에 착수했다. 1937년 11월, 병기국은 새롭게 개발한 도료(R1XS58A)를 평시용 대체 표준으로 도입하되 전시에는 일반적인 무광 도료를 사용하는 안을 권고했다. 이 도료는 기존의 무광 도료와 색상 차이가 없었음에도 사람의 눈에는 더 어두워 보였다. 어두운 색상의 유광 도료는 일반적으로 같은 색상의 무광 도료보다 더 어두워 보이며 유광 마감이 채도를 높이는 경향이 있기에 더 선명해 보인다.

유럽에 전운이 드리우기 시작하며, 미 육군은 전시 체제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1940년 7월 14일, 육군 부관참모(Adjutant General)는 도색과 위장에 대한 모든 권한을 공병대(the Corps of Engineers)에 이양했고 7월 18일엔 색상 그 자체를 제외한 도료 배합과 조달의 결정권을 병참대(the Quartermaster Corps)로 넘겼다. 1940년 10월 12일, 병참대는 미국이 교전에 관여하게 될 가능성을 고려해 새로 조달되는 모든 물자를 임시 규격서 ES 474호에 따라 무광 에나멜 도료로 도색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미 육군 규격서 3-1의 증보판 색상 견본 22번, 즉 병참대 22번 색상(Quartermaster Colour No. 22) 내지 QM Colour 22와 같은 색이었다. 이는 회계연도 1941년 이래 조달된 모든 신규생산 기갑차량의 도색이 1920년에 제정된 무광 올리브 드랍으로 되돌아감을 말했다. 변경된 도료는 1930년대 말에 생산된 전차에 칠해진 유광 올리브 드랍과 명목상 색상의 규격은 같았으나 사람 눈에는 더 밝아 보였다.

이와 관련해, 그 시점 육군항공대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간략히 언급해 두는 것이 좋겠다. (역주 – 원문에서 1941년 6월 20일 육군항공대 창설 이전의 항공 부대까지 포괄해 육군항공대로 칭하고 있으므로 번역도 이에 따랐습니다) 미 육군항공대(US Army Air Forces; USAAF)와 지상군(US Army Ground Forces; AGF) 도료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많은 낭설이 있으며 그 이유는 뒤에서 밝히겠다. 육군항공대 역시 항공기에 22번 올리브 드랍 색상을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색이 너무 밝은 감이 있었다. 그 결과 육군항공대는 1932년부터 지상군의 올리브 드랍보다 어두운 다크 올리브 드랍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다크 올리브 색상은 당초 수성 위장 도료용 색상 31번으로 불리다가 1940년 10월 다크 올리브 드랍 41로 표준화되어 직물용 방수 도료, 에나멜 도료, 락카 도료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색상 표준 자체는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육군의 올리브 드랍 도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병기국 기록에 따르면, 1942년에 색상표의 부족으로 일부 제조사에서 규격서 3-1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색상의 도료를 사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색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해당 차량들은 그대로 취역했다. 이 문제는 1942년 말 들어 색상 표준의 보급을 확대하고 정부 표준을 더 엄격히 적용하며 사그라졌다. 전쟁 초기에는 카드뮴 안료의 부족으로 인해 1920년의 규격서 3-1을 따르기로 되어 있던 도료의 배합이 변경되었다. 공병대는 전쟁 중 또 하나의 색상 표준을 도입하며 일을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해당 체계에서 올리브 드랍은 9번 색상이었고, 규격서 3-1의 병참대 색상 22번과 다를 것이 없었다.

1942년 10월 21일에 도료의 관리 책임은 다시 병기국으로 돌아갔고 해묵은 규격서 3-1을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표준에는 오직 24종의 색상만 존재했고 모두 유광이었던 반면 당국에서는 이제 무광과 반광, 유광을 구분해 명시하길 원했다. 거기다 각 군에서 총 175가지 색상의 도료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 중 대부분은 민간용 도료 기반으로서 정부 표준에 존재하지 않는 색상이었다. 따라서 당국은 도입할 색상의 수를 줄이려 했다. 1943년 3월 16일, 병기국은 72가지 표준 색상과 세 가지 광택을 규정한 규격서 3-1F 및 부속 색상 카드(1차 개정판)를 제안했다. 이는 1943년 4월 21일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1943년 1월, 전술한 과정의 일환으로 육군 자원 및 생산국의 A.I. 토튼 주니어(A.I. Totten Jr.) 소령은 동 시기에 쓰이던 두 가지 올리브 드랍, 즉 육군항공대의 다크 올리브 드랍과 지상군의 올리브 드랍을 통합해 육군/해군 (Army/Navy; AN) 319라는 새로운 색상으로 통합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이는 결국 지상군용 올리브 드랍과 같은 색이었다. 1942년에 이미 적외선 필름에 잘 포착되지 않는 다크 올리브 드랍 도료를 개발한 상태였던 육군항공대는 이 안을 살포시 씹었다. 지상군의 올리브 드랍 도료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그 결과 육군항공대는 새로운 319 올리브 드랍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썼다. 위의 일들은 AFV 모델러와는 상관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일부 모델러와 차량 복구 매니아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오해를 불식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며 널리 퍼진 오해는 이렇다. ‘지상군이 밝은 톤의 319 올리브 드랍 색상을 채택하며 1943년 이후 전차와 전술 차량을 더 밝은 색상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AN 319 올리브 드랍은 지상군의 올리브 드랍과 똑같았고, 단지 육군항공대의 다크 올리브 드랍보다야 밝았을 뿐이다.

패튼 박물관의 찰스 레몬스와 같이 실제 차량 및 부품을 자주 접하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전쟁 후기에 투입된 전차들의 색이 1942-43년의 전차보다 더 어두우면 어두웠지 더 밝지는 않다. 색상 규격은 변함이 없었으나 도료의 경우 안료가 바뀌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내구성이 향상되고 색이 덜 바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올리브 드랍의 정확한 색상을 놓고 벌어진 혼란의 또 다른 요인은 2차대전 후에 나타났다. 1950년 1월 12일에 발표된 새로운 연방 규격 TT-C-595에서 올리브 드랍은 3412번 색상이었다. 1956년 3월 1일, 또 다시 새로운 연방 표준 규격(Federal Standard; FS)이 도입되자 무광 올리브 드랍은 (FS) 34087, 유광과 반광은 각각 14087과 24087이 되었다. (역주 – FS코드의 첫 자리는 광택을 나타내며 본문과 같이 1, 2, 3은 각각 유광, 반광, 무광을 뜻합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이 이딴 잡소리들과 2차대전 전차 프라모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표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1968년에 FS 595A 규격이 발표되면서 FS 34087의 색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새로운 34087 색상은 기존의 올리브 드랍에 비해 더 밝고 갈색 빛이 강했으며 본래대로라면 색이 같았어야 했을 유광 14087 및 24087과 일치하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새로운 올리브 드랍이 34087이 연방 표준에 선을 보였던 1960년대 말까지 모형 취미는 그다지 인기가 없던 덕에 모형용 도료 제조사들과 수많은 모델러들은 이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모델러들과 모형용 도료 제조사들은 대전기 무광 올리브 드랍이 전후 FS 34087과 일치한다는 것만 인지한 채 전후 FS 34087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필자가 보유한 대전기, 1956년, 1960년(즉 FS 595A 이전), FS 595A 초판의 컬러칩을 비교해 보면 FS 595A의 올리브 드랍만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인다. 육군은 행정차량의 유광 올리브 드랍의 색이 전술차량의 무광 올리브 드랍과 달라지는(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어두워지는) 실수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그 결과 1984년 FS 595A 규격의 7차 개정에서 –4087 계열은 삭제 후 대체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FS 595B에서는 –4087 계열 색상 세 가지가 모두 각각 표준 색상으로 부활했다. 다만 기존의 FS 14087은 14084로 변경되었고 34087은 34088이 되었다. 다시 말해 FS 595 도입 후의 색상 규격을 바탕으로 대전기 올리브 드랍의 색상을 가늠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잘못된 통념, 해외 답사, 다른 형태들의 심층 연구

이 취미에 발을 오래 담갔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대전기 도색에 대한 억측, 풍문, 오해, 추측, 기타 등등 이러쿵저러쿵 실없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분명 AFV 모델러에 비해 에어로 모델러에게 더 흔한 일인데, 올리브 드랍 도료처럼 칙칙한 색에 대해 떠드는 게 뭐가 재밌겠는가? 보통의 장광설은 이런 식이다 - 우리 옆집 사는 프리츠가 12살에 에바 브라운 금발 강습대대에 자원해서는 킹타이거 전차에 RLM 069 퍼플 브라운 색상의 마름모꼴 공군 마크를 붙인 얘기를 해줬다느니 어쩌니...더 일반적인 패턴은 이렇다. “우리 이웃집 사람(혹은 삼촌, 할아버지 등등)이 2차대전에 참전했었는데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어쩌고저쩌고...”

필자는 전쟁이 끝난 지 반 세기나 지나서 나온, 정확한 도료 색상에 대한 모든 형태의 증언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필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전쟁 중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대부분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본인들이 쓰고 있던 장비가 무슨 색깔인지 따위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전투식량의 맛이야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도료 색상 따위는 알 게 뭐란 말인가? 필자가 인터뷰한 병사 중 위장도료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병사는 전혀 없었고, 그들 모두 색상을 묘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어휘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카키 드랍, 올리브 드랍, 필드 드랍, 올리브 그린, 다크 브라운 등의 용어가 나타내는 미묘한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필자가 인터뷰한 전차 승무원 대부분은 본인들이 탔던 전차의 색을 기억하지 못했고, 기억이 남아 있는 몇 명도 대개는 ‘무슨 어두운 색’이나 다크 브라운 정도로 표현할 뿐이었다.

또 다른 대중적 낭설에는 패턴이 있다. ‘거 내가 TV 프로그램/컬러 사진/기타 등등을 봤는데, 거기서 보니 색이 이러이러하더라...’ 이건 완전한 헛소리다. 필자는 방송 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했으며 TV에 나오는 장면은 실물과 거의 완전히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다. 2차대전의 컬러 영상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TV 다큐멘터리는 컬러 필름을 비디오테이프로 변환해 만들어졌다. 필자는 실제로 2차대전에 촬영된 진품 컬러 필름을 가지고 작업해 본 적이 있는데, 보존 상태와 색상의 질이 천차만별이었다. 먼저, 당시의 컬러 필름은 화학적으로 취약해 색이 쉽게 변하기로 악명 높았다. 둘째로, 필름을 비디오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색상 밸런스에 아주 각별한 유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색은 변질된다. 테이프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색상 밸런스를 정확히 설정하지 않으면 또 다시 색이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최종 편집본 테이프에 해설을 더빙할 때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진다. 종종 원본 필름과 천양지차로 달라지곤 하는 상용 비디오 테이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컬러 사진의 경우에서도 위의 문제 대부분이 나타난다. 그 사진들은 원본과 완전히 달라진 상태로 책이나 잡지에 개제된다. 본 기고에 첨부된 사진 역시 참고용일 뿐 정확한 색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모델러들이 흔히 늘어놓곤 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거 내가 군대에 있을 때(혹은 군사 기지에서 일하거나 했을 때) 말인데, 차량을 칠해 보니까 도료 캔별로 색상이 다르더라고. 그러니까 올리브 드랍은 아무 톤으로 칠하든 별 문제 없어.” 이런 이야기가 아주 거짓말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이는 정확한 색상을 찾아보기 귀찮은 모델러들의 변명으로 쓰인다. 도료별 편차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소문 이외의 근거를 찾기 어렵고, 그 소문의 상당수는 색이 바랜 도료 위에 새 도료를 발랐을 때의 차이와 새 도료간의 색상 차이를 혼동하고 있다. 전쟁 기간 동안 미 육군은 색상된 도료가 규격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검사관을 각 도료 공장에 두고 있었다. 군사용 올리브 드랍 도료를 생산하는 공장의 숫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물론 색상 차이가 아예 없지야 않았겠지만, 크게 차이가 났을 확률은 희박하다.

도료의 색상 차이는 안료 자체의 편차보다도 바래거나, 잘 섞지 않았거나, 제대로 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신품 전차를 재도색하는 일은 없다. 한동안 전선에서 활동하다 수리가 필요해졌을 때 재도색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새 도료를 바를 때쯤 기존의 도료는 바랬거나 흙먼지가 묻었을 것이다. 모델러들에게 흔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으로, 미군의 전차병들은 직접 도료를 갖고 본인의 예술혼을 불태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독일 육군과 달리, 미 육군은 전차대대와 같은 전술 단위 부대에 위장용 도료를 지급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도색은 창정비 과정 중 병참대대에서 시행됐으며 위장 도색은 공병대대가 담당했다.(역주 -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정비대대가 맞는 것 같으나, 일단 원문에 분명히 engineer battalion이라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임의로 수정하진 않겠습니다) 필자가 ‘바로 그 색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전쟁 중 도료에 나타난 약간의 편차가 아무 녹색, 갈색 도료나 집히는 대로 사용하는 모델러에게 변명을 제공하진 않는다.

모형에 대전기 올리브 드랍 구현하기

도료 및 색상에 대한 이 환장하도록 복잡한 설명들은 하나의 당연히 한 가지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 2차대전 미군 전차 모형을 대체 무슨 색으로 칠하란 말인가? 역사 수업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모형용 도료를 확인해 보자. 필자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여러 종류의 모형용 올리브 드랍 도료가 자연광, 형광등, 백열등 아래에서 필자의 TT-C-595 규격 3412번 및 변경 전 FS 34087 컬러칩의 색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는 아래에 요약되어 있다. 대전기 올리브 드랍과 근접한 색상은 기본적으로 타미야 아크릴 XF-62 뿐이고, 그 다음은 폴리 스케일 아크릴이겠지만 타미야와는 격차가 있다. 군제와 모델 마스터는 FS-595A 초판의 함정에 걸려 대전기 올리브 드랍에 비해 너무 밝고 선명하다. AN 613 다크 올리브 드랍에 해당하는 모델 마스터의 도료 두 종은 지나치게 잿빛이다. 험브롤 155는 녹색 빛이 과도하다.

이렇게 실제 컬러칩과 비교를 해 보았는데, 프라모델 도색용으로 사용했을 때는 어떨까? 여기엔 두 가지 충돌하는 주장이 있는데, 말하자면 과학적 관점과 미술적 관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색상은 그냥 색상일 뿐이고, 모형용 도료는 컬러칩의 색을 정확히 따라가야 한다. 미술적 관점에서는 해당 색상을 그대로 사용하면 스케일 이펙트로 인해 되레 비현실적으로 보일 것이고 올리브 드랍으로 칠한 실제 차량을 약간 거리를 두고 보면 조그만 컬러칩을 가까이서 봤을 때보다 더 밝게 느껴질 것이다. 필자는 올리브 드랍과 같은 어두운 색상을 고증색 그대로 모형에 칠할 경우 지나치게 어두워 보인다고 생각하기에 후자 쪽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필자는 프라이머를 입힌 가로 2피트, 세로 3피트의 아크릴판에 타미야 올리브 드랍 도료를 칠했다. 이를 통해 아주 과학적인 검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논쟁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하고자 했다. 필자는 습도가 낮은 날 직사광선 아래에서 화이트 밸런스를 맞춘 뒤 약 15피트 거리에서 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니콘 쿨픽스 995)를 이용해 아크릴판을 촬영했다. 올리브 드랍 컬러칩 및 다른 도료들을 칠한 컬러칩과 함께 그 사진을 컴퓨터로 옮겼고, 포토샵으로 색상을 측정하며 이들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는 스케일 이펙트를 뒷받침하는 쪽이었다. 일정 거리 떨어져 촬영한 아크릴판의 색이 컬러칩에 비해 15-17% 밝았고 채도는 약간 낮았다. 이 효과는 광원 환경, 태양과 아크릴판의 각도, 반사율 등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역주 – 본 칼럼을 번역하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입니다. 한국 모형계에서 스케일 이펙트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같은 색이라도 면적에 따라 밝기가 달라 보이는 착시를 말하는 반면 해당 칼럼을 비롯해 많은 영미권 포럼 게시글에서는 눈에 보이는 면적이 같아도 실제 거리에 따라 밝기가 달라 보인다는, 즉 미술의 공기원근법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네요. 또한 필자의 정확한 실험 의도는 모르겠으나 해당 실험은 ‘맑은 날 실외의 전차를 보는 상황’과 ‘내 방의 전차 모형을 보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색상 차이를 말해줄 뿐, 영미권에서 말하는 스케일 이펙트 자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똑같이 직사광선 아래에서 촬영한 컬러칩끼리 비교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스케일 이펙트에 더해 영향을 주는 문제가 색 바램과 흙먼지다. 어두운 도료는 색이 바랜다. 1944년 노르망디에 투입된 미군 전차들이 대개는 한두 해 전 생산돼 도색이 완료된 채 대부분의 시간을 햇빛 아래에서 보냈음을 상기하라. 한술 더 떠서, 도료의 종류에 따라서 색이 바래는 양상도 다르다. 예를 들어, 대전기 미군 올리브 드랍은 대전기 실차량과 친숙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큼 황톳빛으로 바래는 경향이 있었다. 상술했듯 전쟁 후 도료에 변화가 일어나자 그 양상도 달라져 이제 일부는 잿빛으로, 일부는 미묘하게 붉은빛 내지 보랏빛으로 바래며 애버딘 시험장의 단골들에게 친숙한 모습이 된 것이다! 흙먼지 역시 대개는 올리브 드랍에 비해 밝기 때문에 색을 밝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모델링의 관점에선 널리 쓰이는 도색 기법들이 이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워싱을 들 수 있다. 타미야 도료와 같이 대전기 올리브 드랍과 거의 일치하는 색상에서 출발하더라도 로우 엄버로 워싱을 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더 어두운 결과물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턴 미적 결정의 영역이다. 일단은 표현할 대상에 달려 있다. 1943년 중반에 생산되어 1944년의 표식을 재현하고 있는 중기형 M4A1를 재현한다고 했을 때, 그 전차는 1944년 2월 생산된 동시기의 M4A3E2 점보셔먼보다 더 심하게 색이 바랬을 것이다.

필자의 추천은 고증에 부합하는 색에서 출발해 적절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다. 아주 어두운 색으로 워싱을 할 생각이라면 밝은 톤에서 시작하라. 필자는 타미야 올리브 드랍을 좋아하지만 대전기 기갑차량의 모형에 적용할 때는 항상 다크 옐로우(팬저 옐로우)를 섞어 톤을 밝게 하는데, 근본적으로 올리브 드랍은 황토색과 검정색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올리브 드랍의 톤을 밝게 하기 위해 흰색을 섞는 것은 도료의 채도를 떨어뜨려 잿빛으로 만드므로 피할 것을 강력히 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FS-595 규격에서 미세하게 어긋난 색상을 사용해 스케일 이펙트를 재현할 수 있다. 폴리 스케일 도료는 앞서 실험한 아크릴판의 색상과 거의 일치하고, 모델 에어 역시 비슷하다. 군제 아크릴과 모델 마스터 에나멜은 FS-595A에서 변경된 색상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스케일 이펙트가 적용된 올리브 드랍과 가까워졌는데, 높아진 채도로 인해 색이 지나치게 선명하긴 하지만 이는 약간의 웨더링으로 상쇄할 수 있다. 아래의 표에 각 도료가 모형용으로 얼마나 적합한지 적어 두었는데, 다만 이는 필자의 의견일 뿐 어떠한 과학적 검증 결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의 말

올리브 드랍의 역사를, 특히 육군항공대 쪽 측면을 되짚어 가는 데 도움을 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의 다나 벨(Dana Bell)에게 감사드린다. 그는 미군 항공기의 도색과 표식에 대한 다수의 저작으로 유명하며 현재 2차대전 미군 항공기의 도색 및 위장에 대한 책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통찰력 가득한 조언을 해준 패튼 박물관의 찰스 레몬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이 글에 사용된 몇몇 컬러 사진을 구해다 준 조지 발린(George Balin)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역주 - 위의 컬러칩 및 표는 본 칼럼 발표 당시에 시판되던 도료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당연히 21년이 지난 현 시점에는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더 좋은 도료들이 있습니다. AK사의 Real Color의 경우 본 칼럼의 저자인 스티브 잘로가가 직접 참여했다는 점을 홍보 요소로 삼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