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키트는 검색을 해 보니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라고 되어 있더군요. 무슨 만화가 원작으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컨셉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인들이 저렇게 "남자는 어떻다", "여자는 어떻다" 라는 말을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모습이 제게는 참 신기하게 보입니다. 제가 지금 직장에 10여년 전쯤에 입사했을 때, 처음 받았던 교육 내용 중의 하나가 "아예 '남자', '여자'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라" 였습니다. 그 교육 내용에 저도 동의합니다.
왜 이 제품을 만들 생각을 안하냐 하면...
뜯으면 저 귀여운 아저씨가 화낼 것 같아서요. (농담입니다.) 네, 맞습니다. 아까워서요. 포장이 너무 고급스럽게 잘 되어 있거든요. 어렸을 때 잘 포장된 제과점표 고급 과자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아까워서 도저히 뜯어 먹지를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어느 날 큰 마음 먹고 뜯어서 먹었는데 그 맛의 허접함에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 키트도 맛은 비슷할 것 같네요. 하지만 얘는 오래 놔둬도 상하거나 개미가 꼬이지는 않으니까...
좌판에서 중고책과 군것질거리를 파는 컨셉의 제품입니다. 저 어렸을때만 해도 육교 위에 돗자리 깔아놓고 책 파는 아저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죠. 한쪽에 진열된 "사진예술", "XX마담의 고백", 이런 것들은 정말 사고 싶었지만 돈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고...
피트로드의 이 대포는 러일전쟁 때 여순 요새 공략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아이템이 중국 업체에서 최근에 나온 것으로 압니다. 아마 후발주자이니 이 제품보다 품질이 더 좋겠죠. 그럼에도 이 제품은 그냥 지금 상태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집니다. 개봉되지 않은 지금 이 패키지 상태 그대로 박물관이나 역사기념관에 전시된 물건처럼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군의 이미지는 주로 2차 대전때의 모습인데, 아주 오래전에 조선일보사에서 <르 쁘띠 주르날>이라는 프랑스 신문의 삽화를 전시하는 행사를 하면서 발행했던 화첩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기의 일본군의 모습이 잘 나와 있습니다. (저도 한 권 소장중입니다.) 그 시절 종군기자들은 사진을 찍은게 아니라 그림을 그렸더군요. 삽화를 그린 화가의 주관에 의해 미화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시절의 일본군의 모습은 2차 대전때의 모습보다 훨씬 말끔합니다.
다만 내용물의 품질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트로드'라는 회사에 대한 품질 이미지가 썩 좋지는 않아서...
여담입니다만, 제가 대학 시절에 국제관계 관련 과목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이 나중에 무슨무슨 장관인가까지 하셨습니다), 그 분 말씀이 20세기 이후의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한 사건으로 영일동맹을 꼽으시더군요. 영일동맹 이후로 모든 사건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이어지면서 지금의 분단 고착화까지 간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 분의 견해가 옳다면, 우리도 영국의 피해자인 셈이죠.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그 새끼를 찍으면 대충 맞는다.")
반다이 구판 4형제는 진짜 구판은 아니고, 비교적 최근에 재판이 수입된 적이 있습니다. 얼떨결에 샀습니다. 저 중에서 무사이 전함은 예전에 한번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작지만 야무진 품질에 크게 감명받았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다른 녀석들도 비슷하게 준수한 품질이네요. 늘 하는 퍼티질, 사포질에 색칠까지 해주면 아주 근사하게 결과물이 나올 녀석들입니다.
...만, 당분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이 상태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모빌슈트보다도 이런 조연급 탈것들이 어렸을 때 보았던 '로봇대백과'의 추억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거든요.
반다이 건프라는 종류가 많아서 그런지, '희귀본', '시중에서 사라진 명품' 뭐 그런게 되게 많더라구요. 저는 건프라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런거 쫓아다니는데는 별 관심은 없습니다. 다만, 어쩌다가 손에 들어온 그리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제품은 이상하게 애착이 갑니다. 제가 특별히 라크스 클라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자쿠 워리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이 제품은 '희귀본'도 아닙니다. 지금도 해외배송으로 별로 비싸지 않게 구매가 가능하죠.
부부들에게 물어보면 제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왜 이 사람과 결혼했느냐?" 라는 질문이라고 하죠. 딱히 이유를 대기가 어렵거든요. 하긴 누군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의 대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저도 제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그냥 가지고 있을 생각입니다. 이딴 허접한 키트를 간직한다고 해서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출색은 이쁘네요.
------------------
이제 다른 키트들을 만들러 갑니다.
만들 것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