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야 M41 워커불독입니다. 여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제품입니다만, 세월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키트의 데칼이 파사삭 갈라져서 같은 타미야의 별매 데칼인 "Modern Military Decal Sheet A"를 썼는데, 얘도 갈라집니다. 도대체 어쩌라고...
1961년 알래스카에서 열린 훈련 당시의 마킹이라고 합니다. 비틀즈가 미국을 폭격하기 시작하고, 케네디 대통령이 막 취임하던 그 시절에 미군은 워커불독을 쓰고 있었군요. 그로부터 대략 20년 후 쯤, 한국에 사는 한 소년은 유선조종 워커불독을 조립해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죠. 포신에 성냥개비 꽂아서 불 붙이지마자 얼른 시동 걸면서요.
1960년대 생들이 이제 공식적으로 '노인'으로 잡히고 있습니다! 고로 워커불독은 노인 탱크입니다. 근데 요즘엔 어르신들이 기운이 더 좋아요. 오늘 시내버스에서 어르신 한 분이 지나가다가 저와 몸을 살짝 부딪쳤는데, 무슨 바윗덩어리에 부딪치는 줄 알았습니다. 덩치도 조그맣고 구부정 천천히 걷던 분인데...
타미야 1/700 모가미는 만들어 놓고 보면 밋밋합니다. 현용 구축함이 다 그렇죠, 뭐.
함선 모형은 이제 당분간 안 하려고 합니다. 함선에 에칭까지 두르는 분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솜씨만 부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이 부럽습니다. 모형 작업에서 가장 수고를 많이 하는 부위가 눈과 손인데, 노화에 따른 불편은 바로 그 부위부터 몰려옵니다.
모형 제작을 어떻게든 날로 먹을 수법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행위의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이해한다."
이런 경우가 찾아보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매년 꼬박꼬박 조상 제사를 지낸다든가,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을 돈내고 탄다든가, 옷을 입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진짜 문신을 새긴다든가... 그런 목록들의 공통점이라면, 본인에겐 세상 중요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뭐 그냥 그런가보다, 조금은 하찮아 보인다는 점이랄까요.
그 목록에는 모형 키트를 산더미처럼 수집하는 것도 단연 포함되겠죠.
저도 많이 쌓아놓고 있습니다. 다들 많이 쌓아놓고 계시잖아요. 맞죠? 시장에 가보면 '종합젤리'가 아직도 팔립니다. 제사 지내는 집이 여전히 많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쌓아놓은 키트를 너무 고민하지 맙시다. 인생은 원래 하찮은 것으로 가득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