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프라모델에 입문했을 때 락카 도료를 써봤는데 그 지독한 냄새에 놀라서 바로 타미야 아크릴로 바꿨던 기억이 납니다.
에나멜 신너도 환기 안 되는 곳에서 냄새를 맡고 있으면 머리가 띵한 느낌이 오기 때문에 작업 시간을 길게 안 가지고
바로 환기시키곤 하는데 락카 신너 냄새는 '이건 위험해'라는 느낌이 바로 올 정도로 독성을 지닌 유기 화합물 조합인지라...
최대한 락카를 안 쓰려고 했는데...문제는 락카만큼 모형에 적합한 성질을 지닌 도료가 없어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겁니다.
아크릴은 솔직히 모형에는 그리 적당한 재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모형용 아크릴이 많이 나와 있으나 도막의 강도 문제도 있고
에어브러쉬로 쓰기엔 매우 곤란한 점이 많죠.
락카 도료의 경우는 에어브러쉬로 뿌릴 경우 락카 신너가 모형의 폴리스타이린 플라스틱 표면을 살짝 녹여서 도료 입자를
화학적으로 단단하게 고착시키는 방식이라 제대로만 칠하면 표면이 매끈하고 마스킹 테이프에 끄덕도 안 할 정도로
좋은 표면 상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 락카는 도료 입자들 간의 결합력이 좋지 못한 특징이 있어서 표면에 입자가 단단히
붙지 못한 경우에는 입자가 쉽게 떨어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속 표면에 락카 서페이서를 뿌리면 금속 표면에 락카
입자가 붙지 못하고 입자들 간의 결합력도 약해서 전단 응력(shear stress)에 버티는 힘이 좀 떨어지죠. 그래서 금속 표면에
락카 도료를 뿌리고 마스킹 테입을 붙였다 떼어내면 도료가 다 떨어져 나옵니다.
반면, 아크릴의 경우는 도료 입자들이 표면에 화학적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나 일단 건조되면 입자들간의 결합력이 높고
어느 정도의 탄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에 전단 응력에 버티는 힘이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금속 표면이든 뭐든 아크릴
서페이서는 잘 붙습니다.
그래서 아크릴같은 경우는 곡률이 크지 않고 널찍한 표면에 뿌리기 좋습니다만(도료 입자들 간의 결합이 좋아서 전단 응력에
잘 버팁니다.) 항공기 모형 랜딩기어나 국소적으로 힘이 작용하는 모서리가 많은 부품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크릴은 에어브러쉬를 너무 잘 막히게 합니다. 바예호 메카 프라이머같은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료입자들끼리
뭉치는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에어브러쉬가 막혀서 제대로 작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써본 것들 중에
가장 에어브러슁이 수월한 제품은 아크릴에 폴리우레탄 성분을 첨가한 바예호 서페이서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아크릴은 알콜에 잘 지워지기 때문에 데칼 연화제를 필수적으로 써야하는 항공 모형같은 경우에는 아크릴계
마감제가 아주 안 좋더군요. 데칼 연화제에 알콜 성분이 기본적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저는 전차 모형같은 경우는 궤도 말고는 아크릴 프라이머, 아크릴 페인트, 군제 탑코트 등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항공기 모형에는 어쩔 수 없이 도료는 타미야 아크릴을 쓰더라도(타미야 아크릴은 사실 아크릴 도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감제는 락카 수퍼클리어를 쓰는 수밖에 없어서 그냥 수퍼클리어로 마감합니다.
타미야 아크릴은 약간만 과도하게 뿌려도 표면의 입자 적층 상태가 랜덤하게 되어서 상당히 거친 표면이 얻어지는데...
여기에 락카 수퍼클리어로 한 번 마감을 해주면 마치 애초에 락카 도료로 뿌린 것과 같은 비교적 매끈한 표면이 얻어지고
이 표면은 알콜에 반응하지도 않아서 데칼 붙이기에도 적합한 표면 상태가 되죠.
최근 항공기 모형에 바예호 프라이머를 계속 써봤는데....항공기에 굳이 아크릴 프라이머를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에어브러쉬 청소 용도로도 락카 신너는 유용한 편입니다. 타미야 에어브러쉬 크리너의 주성분이 아세톤이고
저는 아세톤으로 에어브러쉬 청소를 하곤 하는데 아세톤의 휘발성이 상당히 높아서 도료찌꺼기들을 잘 녹이지만 금방
증발해버리니 에어브러쉬 노즐에 찌꺼기들을 남기곤 하더군요. 그럴 경우에는 락카 신너를 좀 붓고 좀 기다리면
입자들이 잘 녹습니다.
결국은 락카를 안 쓸 수가 없겠더군요. 처음에는 방독 마스크에 눈 보호 고글까지 썼었는데 너무 불편해서...
지금은 스프레이 부스에 더 강력한 팬을 써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나마 군제의 락카 신너가 그나마 냄새가 덜해서 조금 비싸도 군제 신너만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ipp 신너는 냄새가 좀 더 독하더군요. 성능은 군제나 ipp나 대동소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