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스카 1/35 룩스입니다. 데칼을 물에 띄우니 파사삭 하네요. 옛날 타미야 데칼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현대 전차들이 거의 100년 전 독일 탱크를 닮은 것인지, 아니면 그 시절 독일 탱크들의 디자인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적이었던 것인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여기 MMZ 게시판에서 어떤 분이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취지는) 엉터리 완성작 사진을 올리는 심리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질문이 제 스스로에게 줄곧 물어 온 질문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준이 못 되니 당연히 자랑하려는 동기는 아닐 겁니다. 올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올려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도대체 왜 완성작 사진을 여기에 올리는 걸까요?
제가 나름 내린 최선의 대답은 "그냥"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왜 엉터리 완성작 사진을 올리는가?"에 대한 대답도 되고,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왜 엉터리 모형을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애시당초 이 취미가 "그냥"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왜 접합선을 수정하는가? 그냥. 왜 별매 에칭을 돈주고 사서 다는가? 그냥. 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라인 하나를 확인하려고 인터넷과 자료집을 뒤지는가? 그냥. 왜 평생 다 만들지도 못할 키트를 방구석에 산처럼 쌓아두는가? 그냥.
누군가는 "그냥" 예술품을 만듭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냥" 쓰레기를 만듭니다. 누군가는 "그냥"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는 "그냥" 안 합니다. 이는 25년 전쯤에 다음 플라모델 카페에서 백운호선장이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저에게 했던 "차마 눈뜨고 못봐주겠소."라는 코멘트에 대한 저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남이 하는 일에 쓸데없이 '평균 올려치기' 하지 마시고 "그냥"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아카데미 1/72 헬다이버입니다. 에칭이 들어있는데, 설명서를 읽어본 후 미련없이 포기했습니다.
사람마다 인생을 사는 방식과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제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건대 삶을 후회없이 잘 살려면 이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안 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정말 후회되는 많은 순간들이 저 두 마디 말을 하지 않아서 발생합니다. 까짓거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잖아? 한번 시도해 보자, 도전해 보자, 이렇게 달려들었다가 생긴 데미지는 정말 아픕니다. 데미지 자체도 아프지만, 길게는 남은 생애 내내 뒷수습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무슨 추태입니까.
제가 이 키트를 착수하면서 어리석게도 에칭 붙이겠다고 플랩을 잘라냈더라면? 아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명작 키트입니다.


어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한참 했습니다. 여전히 속이 메스껍고 영혼까지 기가 빨립니다.
평생 누군가와 '전화통화'라는 것을 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는지 곰곰히 돌이켜 봅니다. 정말이지 단 한 케이스도 기억이 안 납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좋은 일이었던 경우는 단언컨데 '단 1건도' 없었습니다. (정말 좋은 소식은 언제나 이메일이나 문서로 오죠.) 그 중 최악은 단연 가족이나 친척에게서 걸려오는 전화구요. 이건 100%입니다. ㅎㅎㅎ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화 공포증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게 왜 요즘에야 이야기가 되는지, 왜 젊은 층에만 국한해서 이야기가 나오는지 오히려 그게 더 의아합니다. 원래 전화라는 물건 자체가 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기분이 개 더러워지는 물건이 아니던가요? 저는 3~40년 전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는 고속버스를 자주 타는데,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버스 안에서 가만히 보면 어르신들은 전화통화를 정말 많이 합니다. 걸기도 많이 걸고, 받기도 많이 받습니다. 그 분들은 너무나 오래 전화를 사용해 와서 이젠 만성이 된 것일까요? 저도 앞으로 20년 정도 더 살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려나요?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