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왕국을 소유한 부자의 덕질의 일환으로 태어나 엄청난 퀄리티의 1차대전 비행기 키트를 짧은 기간동안 폭풍처럼 쏟아냈으나, 작년에 사라져버린 Wingnut Wings의 유작인 Meng 1/32 Fokker DR.1 Triplane 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이전에 적은 글을 참고해주세요.

https://mmzone.co.kr/mms_tool/mt_view.php?mms_db_name=mmz_free&no=383314
https://mmzone.co.kr/mms_tool/mt_view.php?mms_db_name=mmz_free&no=383441

 

박스 크기는 400 x 250 x 50mm 정도로, 얇아서 보관하기 부담없는 편에 속합니다. 1/32는 항공기치곤 큰 것 같지만, 1차대전 항공기는 고작 100마력 근처의 엔진에 나무 뼈대와 천으로 감싼 날개로 날아다녔기 때문에 1/48 현대 항공기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실제 비행기 크기도 날개 길이가 9미터로 자동차 세단 2대 나란히 세운 정도라, 완성작도 날개길이가 채 30cm도 안됩니다.

 

박스 구성물은 커다란 런너 덕분에 든든히 고정될 줄 알았는데, 막상 뜯어보니 부품 일부가 부러져 있더군요 ㅠㅠ

 

역시 Wingnut Wings 의 명성 그대로 엄청난 디테일이 반겨줍니다. 섬세한 리벳 자국이라든지, 사진으로는 담아내기 어렵지만 캔버스천을 꼬매서 고정한 날개 표면의 꺼끌꺼끌한 감촉은 도색하다가 질감을 먹어버려서 매끄럽게 변하는 것이 아까울 지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운데 부러진 부품이 가슴아프네요. 접합자국이 크게 티날 것 같습니다. ㅠㅠ

 

 


Wingnut Wings 의 키트(?)를 열어보고 느낀 무시무시한 점은 엄청 두꺼운 날개를 통짜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차대전 당시 비행기는 날개가 얇은 편이라 다른 회사도 영국제나 프랑스제 1/32 키트는 이렇게 통짜로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독일 포커사의 날개는 유독 2~3배 두꺼웠는데, 그래서 2005년에 Roden 에서 나온 똑같은 1/32 Fokker DR.1 키트는 요즘 현대 제트기처럼 하나의 날개가 위아래로 구분되고, 양옆 끄트머리를 뚜껑처럼 따로 붙여서 총 4조각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녀석은 플라스틱을 펑펑 쏟아부어서 하나의 날개로 바로 찍어버렸고, 덕분에 무게감도 묵직하고 엄청 튼튼하며, 위아래 금형이 어긋난 곳도 없습니다. 퀄리티에서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느껴지죠.

 

내부의 세밀한 파츠도 감탄하게 만듭니다. 부품을 고정하는 게이트보다 훨씬 얇고 세밀한 디테일도 놀랍지만, 부품 디테일 하나하나가 애프터마켓에서 판매하는 포토에칭 조립부품처럼 칼같이 각져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2005년에 나온 Roden 키트에 포함된 기총은 각진 모서리가 전부 동글동글해서 전형적인 플라스틱스러운? 모형 티가 나는 부품입니다.

다만, 이는 윙넛윙즈 혼자 잘난 것이 아니라 2020년 현시대의 금형 기술이 예전에 비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한 덕이 크죠. 제가 힘들여 옛날 키트를 구하지 않고 최신 금형 키트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증조사) 노력만 하면 플라스틱 금형만으로 디테일을 칼같이 살릴 수 있는 시대이기에, 윙넛윙즈가 얼마나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잘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로덴 2020 최신 금형만 보더라도 날개나 몸통에서 세부 디테일은 뭉개버리고 통짜부품으로 밋밋하게 나오거든요? 근데 이 키트는 구석까지 리벳 투성이이며, 캔버스천이 포개진 단차까지 고스란히 재현했습니다. 1차대전 비행기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서 실제 비행기의 모든 걸 바로 코앞에서 조사할 수 있는 회사만이 가능한 노가다죠. 자료책이나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도면 블루프린트만으로 킷을 만드는 회사와의 격차가 바로 느껴집니다.

 

이건 기본 런너의 DR.1 용 부품을 F.1 부품으로 컨버전시키는 런너입니다. 이런 런너가 하나 더 들어있어서 고증에 정확한 비행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여분의 부품을 도색 테스트용으로 쓰곤 합니다.

 

 

어휴...... 살벌한 디테일을 볼 때마다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이것보다 더 고퀄엔진 파츠는 애프터마켓밖에 없습니다.

 

 오늘 받은 CSM 의 1/32 Nieuport 17 (오른쪽)과 비교해봤습니다. 나름 비싼 고퀄킷이지만 Wingnut Wings 의 압승입니다.

 

고급 키트의 상징인 포토에칭입니다. 거의 모든 윙넛윙즈 키트에는 한정판이나 애프터마켓에서 볼 수 있는 포토 에칭 디테일 파츠를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죠. Meng 은 고작 6만원의 가격에 윙넛윙즈 구성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데칼도 하나의 키트로 4종류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넉넉히 담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설명서는 윙넛윙즈답지 않습니다. 오른쪽은 다른 회사에선 설명서 첫부분에 들어가는 기체에 대한 대략적인 역사 설명인데 별도 책자로 만들었네요. 쓸모는 없습니다.

 

 시원한 대형 사이즈에 컬러 매뉴얼이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하실텐데, 윙넛윙즈를 아시는 분이라면 아쉬운 점이 많이 보입니다. 아카데미 스타일로 조립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간략화된 조립도이며, 고증 관련한 재밌는 설명도 거의 다 빠졌고, 배경도 윙넛윙즈 특유의 고풍스러운 양피지풍 누런색이 아니죠.

 

이번엔 오리지널 Wingnut Wings의 설명서와 Meng의 설명서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윙넛의 설명서는 알바트로스 D.V 입니다.

기존 프라모델 설명서에 익숙하신 분이라면 위와 같은 윙넛윙즈의 설명서를 보시면 좀 낮설게 느껴지실 겁니다. 먼저, 공간활용이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부품 하나 붙일 때마다 단계별로 나오고, 해당 부품과 관계없는 주위 다른 부품까지 풀컬러로 3D 도면이 나와서 지면을 꽤 차지하며, 고증을 위해 실사 사진과 설명글도 틈틈이 들어갑니다. 보통 키트라면 흑백 1 페이지나 조감도 하나로 끝날 걸 윙넛윙즈 설명서에선 이렇게 2~3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모형을 만들기 위해 고증 자료를 파고든 분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실 겁니다. 제작사가 자료조사까지 다 해서 이유식처럼 손수 떠먹여주는 거니까요. 자료 수준도 현실에 있는 실물 비행기로 직접 측정한 거라서 세상 어떤 정보보다 정확합니다. 귀찮고 힘든 고증 조사도 대신해주고, 조립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3D 그림으로 몇차례에 걸쳐 자세히 그려주는 올인원 모형 회사는 이전엔 없었습니다.

 

데칼 설명도 Meng 제품은 현행 아카데미처럼 컬러 도면으로 끝냈습니다. 오리지널 윙넛윙즈의 경우엔 각 기체별 실사 사진과 에이스 파일럿의 사진까지 같이 실어놨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한 페이지에 여러개를 몰아넣어서 작게 만들지 않고, 몇 페이지에 걸쳐서 큼직하게 그려둔 건 다행입니다.

 

http://www.wingnutwings.com/ww/product?productid=3205

윙넛윙즈의 설명서는 단순한 조립시방서를 넘어서 하나의 사료집으로 취급해도 됩니다. 다른 회사 1차 대전 비행기를 만들 때 도움이 엄청나게 되죠. 이것 만이 아니라, 윙넛윙즈 홈페이지를 가보시면 추가로 다양한 실례 사진 및 완성 작례사진도 제작시 이용할 수 있도록 올려져 있어서 참고 자료로 쓸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Fokker DR.1 은 아예 출시되지도 않았는데 윙넛윙즈 사이트엔 여전히 자료가 남아있다는 거네요.

키트를 판매하는 것만 생각하면 윙넛윙즈 스타일의 설명서는 비효율적이고 제작비용을 상승시키는 멍청한 짓입니다. 하지만 모델러로선, '돈버는 것따윈 등한시하고 오직 오너이신 부자를 감동시키기 위해 덕질용으로 차린 회사' 의 돈질에 순수히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브루스 웨인을 위해 깔아둔 레드카펫 위를 몰래 걸어가는 기분이랄까요.

만약 키트 품질이 엉망이었다면 이렇게 정성껏 만든 프리미엄 설명서는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제일 중요한 본질을 놓쳤다고요. 하지만 실제로 1차대전 항공기를 수집하고 타고 날아다니는 부잣집에서 만든 고증에 충실한 프리미엄 키트에, 때깔까지 맞춰서 만든 고급 설명서는, 키트의 품질만이 아니라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명품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했다고 생각합니다.

https://mmzone.co.kr/mms_tool/mt_view.php?mms_db_name=mmz_free&no=383483

그렇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도 윙넛윙즈의 멋진 설명서 양식을 따라 만들기 시작한 걸 겁니다.

 

금형만 본다면 지금까지 나온 모든 Fokker DR.1 키트에 비해 훌륭합니다만, 아무래도 본가가 아닌 Meng 에서 만들다보니 가격은 절반이라도 설명서는 윙넛윙즈 키트 평균에 못 미치는 것이 아쉽습니다. 잘 살펴보면 얼렁뚱땅으로 만들었고, 실사 사진 설명같은 고증자료도 다 생략했으므로 소장가치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외관상 중요한 리깅 부분은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에 완성해도 뭔가 심심한 키트가 되어버렸습니다.

다행이 Fokker DR.1 은 엄청나게 유명한 비행기라 리깅 자료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금형을 설계할 때부터 리깅을 끼울 수 있도록 만든 건지 구멍도 미리 파져있기 때문에, 리깅만 보완해주면 윙넛윙즈다운 포커 DR.1 을 완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추천하는 자료는 1/16 스케일 Model expo 나 Artesania Latina 의 조립 설명서이며, 그 외 윙넛윙즈 다른 제품의 매뉴얼을 다운받아 어떤 리깅실을 써야 하는지 참고하시면 됩니다.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에듀어드(에두아르도?)에서 나온 별매 포토에칭 입니다. 실패할 걸 생각해서 개당 $15 짜리 2개 샀죠. 참고로 에듀어드도 자사의 고품질 애프터마켓 파츠를 듬뿍 추가한 최신금형 비행기 킷을 판매하고 있습니다만, 1/32 1차대전 복엽기는 찾기 힘들고 1/48 이후로만 구할 수 있습니다.

 

도료의 경우, 윙넛윙즈 오리지널은 타미야나 험브롤 도료를 추천하고 있는데, 이 키트는 Meng 에서 나오다보니 Meng 자사 홍보를 위해 Meng 과 콜라보한 AK Interactive 아크릴 물감과 군제 아크릴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근데 안그래도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AK 아크릴 물감 + 아예 수입도 안되는 Meng 콜라보 물감은 검색도 잘 안되는 독자 컬러 코드를 쓰고있어서 구하기 난감합니다.

http://skin-skin5.hanbug1.cafe24.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2601&cate_no=490&display_group=1

그래도 대체품을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AK 수입원 홈페이지에 있는 컬러 변환 페이지에 가셔서, 똑같은 영어이름으로 검색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Burnt Red MC-506 (Meng 콜라보 버전) 은 AK 아크릴 3세대 물감 11097 과 동일한 제품이며, 이에 대응되는 도료로는 바예호 아크릴 814나 군제 아크릴 Acrysion 47 등이 있습니다. 헌데 바예호로는 100% 매칭되지 않으니, 가능하면 군제 아크릴로 통일하는게 좋습니다.

 

1/32 Meng 킷을 포함해서, 앞으로 나무프레임과 캔버스천으로 내부까지 현실같은 1/16 모형을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해 레퍼런스 자료로 구입한 책입니다. 해외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한두주 기다리다보니 하나는 주문이 취소되고 다른 책은 한주 늦게 온다네요. -_-; 나머지는 아마존에서 두배 가격으로 직구해야 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키트도 능력자의 손에 들어가면 훌륭한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정성스럽게 만든 고급 키트는 비싸지만 초보자도 큰 노력없이 프로같은 작품을 뽑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키트는 Meng 보다 더 뛰어났던, 회사가 사라지자 남아있는 매물이 $300로 폭등한 Wingnut Wings 의 마지막 유산을 예전 가격의 절반인 6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역대 최고 퀄리티의 Fokker Dr.1 에 도전하실 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