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료는 흔히 수성과 유성으로 나눕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도색 전 희석액이 수성인지 유성인지를 말합니다. 아크릴 도료는 물 (또는 타미야처럼 알콜이 들어간 물) 로 농도를 조절하고 에나멜이나 락카는 각자 알맞는 솔벤트 신나로 희석하여 씁니다.
하지만 건조가 완료된 도료를 다시 녹이는 방법은 희석용 신나와 크게 상관없습니다. 대부분의 에나멜, 락카 기반 유성 도료는 희석할 때 쓴 에나멜/락카 신나를 쓰면 녹일 수 있어서 직관적입니다. 타미야 패널라인 엑센트 제품이 에나멜의 다시 녹는 특성을 이용한 제품이죠. 반면 아크릴 계열은 물리화학적으로 완전히 굳어버리기 때문에 물로 세척이 불가능한 방수 상태가 되고, 더 쎈 용제인 에나멜/락카 신나로 녹이려고 하면 물감 자체가 파괴되어 안 쓴 것만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크릴 도료는 패널라인 용으로 쓰기에 가장 안 좋은 부류입니다.
건조가 되어도 쉽게 녹일 수 있는 수성 도료 - 수성 물감, 포스터 물감도 아주 좋은 패널라인용 도료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단점 때문에 모형용으로 쓸 수 없는데요. 패널라인 작업 완료 후 그 위에 바니쉬를 뿌려서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수채화나 수채 과슈, 포스터 물감 등 제가 테스트한 모든 제품은 기껏 깔끔하게 패널라인 작업을 해놔도 위에 락카나 에나멜, 심지어 아크릴 기반 바니쉬를 뿌리거나 붓질하는 즉시 패널라인에서 물감이 번져나와 주위로 지저분하게 번졌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수성 물감 테스트는 포기했습니다만, 테스트 한 수성 물감 중 그나마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제품 하나만 소개해봅니다.
* 바니쉬 뿌리지 않아도 되는 투명 캐노피 내부 인테리어에는 수성 물감을 써도 됩니다.

Winsor & Newton Caligraphy ink 는 딥펜 펜촉을 이용해 편지 등에 사용하는 수성 잉크입니다. 이 제품이 일반 파커 만년필용 잉크와 다른 점은 어느 정도 방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락카나 수성 바니쉬를 뿌릴 때 바니쉬가 건조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물감이 녹지 않고 버텨줍니다. 같은 만년필 잉크 제품인 Winsor & Newton drawing ink 는 방수성이 없는 파커 만년필 잉크와 동일한 제품이므로 바니쉬 스프레이를 뿌리자마자 쉽게 번지므로 쓰면 안됩니다.
가격은 6천원 대로 저렴한 편이며, 색상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검은색과 흰색을 섞어서 회색을 만드는 등 조색도 자유롭습니다. 세척하려면 건조될 때까지 30분 정도 기다립니다. 건조가 완료되면 단단한 면봉 (애기용 면봉 등) 을 물에 살짝 담근 후 휴지에 비벼서 물기를 좀 빼낸 후에 세척하면 됩니다. Drawing ink 의 경우 수채 물감처럼 물에 즉시 녹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작업할 수 있으나, 상술한 바와 같이 나중에 바니쉬 뿌릴 때 애먹습니다. Caligraphy ink 는 살짝 방수성이 있기 때문에 에나멜 작업할 때처럼 여러차례 살짝살짝 닦아주면 깨끗하게 닦입니다. 고온 건조를 하거나 오래 건조할 수록 방수성이 강화되므로 하루 이내에 닦아주는 걸 추천합니다. 오직 물만 쓰므로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안전한 제품입니다.

Caligraphy ink 를 패널라인 작업에 사용시 세필 붓을 쓰면 되지만 원래 전용 필기구인 딥펜 dip pen은 패널라인 작업에도 유용히 쓸 수 있는 공구입니다. 딥펜은 보다시피 끝이 뾰족해서 패널라인 선 주위로 번지지 않고 정교하게 흘려넣을 수 있습니다. Caligraphy ink 만이 아니라 타미야 패널라인 엑센트도 이걸 쓰면 정교하게 흘려넣을 수 있고 나중에 번거롭게 닦아내는 작업의 양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딥펜의 단점은 넓은 면적에 흘려넣기에는 안 좋습니다. 엔진처럼 요철이 광범위하거나 리벳 자국처럼 점점이 이어진 경우에는 딥펜보다는 세필붓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