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모형 강좌들을 둘러보다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아이템을 발견해서 구입했지 뭡니까. 비록 비행기나 배 위주로 만들 거라서 디오라마 모형용 아이템인 이 제품은 많이 쓸 일은 없을 테지만, 참 사용하기 쉬워보이고 결과물도 멋져보여서 한번 구입해봤습니다.

이 제품의 이름은 Static grass applicator, 직역하면 정전기 잔디 심는 기계입니다. 유튜브 상으로는 대략 15년 전에 나온 철덕 모형 잡지에서 소개된 것이 처음으로 보이며, 보다시피 오직 모형만을 위해 고안되고 만들어진 멋진 도구입니다. (1970년대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원리는 정전기를 이용하는데, 위에서 떨어지는 잔디 부스러기와 아래에서 받아주는 물풀에 전하를 걸어 잔디가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땅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냥 체로 탈탈 털어서 중력으로 잔디를 세우는 방식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복잡한 디오라마 지형 어디든지 마음껏 적용할 수 있게 되죠.
그러기 위해 본체 손잡이에는 건전지 2개가 내장되며, 총 3000 V 의 고전압이 걸리는데 + 극과 - 극 단자가 접촉하지 안되, 2~3cm 가량으로 아주 가까이 근접할수록 정전기 효과가 극대화 됩니다. 이 제품은 이런 계열의 제품 중에서 가장 싸구려라 고작(?) 3000 V 이기 때문에 세우는 힘이 약하지만 그래도 쓸만합니다. 최대 10만원짜리 서양 순정품은 9V 건전지 5000 V 전압을 걸고 훨씬 강력하게 세워준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체 망이 두가지인 건 잔디 부스러기가 작아 한번에 뭉텅이로 떨어져서 정전기의 힘이 약해지거나 망이 촘촘해서 긴 잔디 부스러기가 안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작은 망은 2~5mm 짜리 잔디, 그보다 큰 잔디는 커다란 망을 이용하게 됩니다. 금속망은 반드시 통 안의 빨간 전선과 직접 맞닿아야 합니다.

잔디를 붙이는 본드는 마르면 투명해지는 목공용 본드를 주로 쓰게 됩니다. 빠른 작업보단 세심한 작업이 중요하므로 건조시간 2시간이 걸리는 일반 오공 201~205 본드를 쓰면 되며, 수용성 본드라 저렇게 검은 - 전극을 본드에 닿도록 시켜서 정전기가 활성화되게끔 만듭니다. 만약 디오라마 재질상 전극을 붙잡을만한 곳이 없다면 철못을 본드를 뿌린 디오라마 바닥에 박아넣고 철못을 전극으로 잡으면 됩니다.
여기까지 준비되었으면 통 안에 잔디 부스러기를 반 이하로 채워놓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닿지 않게, 그러나 최대한 가까이 근접해서 털어주니 순식간에 다 비웠습니다. 결과물을 살펴보니 진짜 잘 세워졌네요.
바깥으로 흩뿌려진 잔디는 회수해서 다시 쓸 수 있도록 미리 커다란 종이나 비닐 등을 깔아둡니다.

아직 마르지 않아서 하얀 목공용 본드가 그대로 보입니다. 그래도 잔디가 본드 위에 똑바로 선게 잘 보이죠? 그 옆 본드가 없는 곳에는 떨어진 잔디가 볼품없이 드러누운 것도 보입니다.

드러누운 잔디는 여러분이 잔디를 구입해서 디오라마에 뿌려도 실망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건 잔디가 잘못된게 아니었습니다. 잔디 심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죠!

2시간 지나서 완전 건조한 상태입니다.
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싸구려 봄철 생풀 색상인데, 마르고 나니 이렇게 세워지고 랜덤하고 꽂힌 것만으로도 고급스러운 잔디밭이 되었습니다. 살짝 만져보면 골프 퍼티 연습하는 필드마냥 빳빳하고 촘촘하게 서 있네요. 보기만 해도 배가 그득히 불러집니다.

색을 영롱하게 반사하면서 정말 예쁩니다 ㅠㅠ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땅 부분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하얀 건 목공용 본드가 완전히 마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목공용 본드의 마르면 유광스러운 표면이 빛에 반사되어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마무리까지 확실히 하려면 제가 유튜브 강좌를 보니까 몇가지 선택지가 있는데요.
1. 마르기 전에 손가락으로 랜덤하게 꾹꾹 눌러서 실제 잔디밭처럼 흐뜨려놓는다.
2. 마른 후 마감재 (탑코트 등)를 뿌려서 잔디가 떨어지는 걸 막는다.
3. 잔디 위에 또 잔디를 뿌려서 촘촘히 만든다. 목공용 풀을 물과 1:1 이나 그보다 약간 진하게 희석해서 스프레이로 뿌리고, 다시 Static grass applicator 로 잔디를 세워서 뿌린다. 이 때 잔디의 색상을 갈색 등 다른 걸로 하면 더 현실감이 납니다.

테두리까지 완벽합니다 ㅠㅠ 진짜 푸르른 잔디밭같습니다. 항구 디오라마나 한번 만들어볼까요?

같이 구입한 잔디 포기 만들기 템플릿과 다양한 색상의 추가 잔디들입니다.

그런데 템플릿의 상태가...?
금속이기 때문에 저기에 집게를 걸면 전압이 걸려서 SGA 가 작동할 수 있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만, 당초 예상과 달리 저 구멍이 다 뚫려 있지 않고 거의 다 막혀 있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인터넷 영상으로는 밑에 기름종이를 깔고 목공용 본드를 좍좍 바른 후, 저 템플릿을 올리고 바로 SGA 를 뿌리는 거거든요? 엄청 쉽고 빠르죠. 그런데 이렇게 구멍이 막혀있으면 저 구멍마다 일일이 모양좋게 목공용 본드를 찍어올리고 골고루 펴발라야 합니다. 작업 시간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나중에 떼어낼 때 잘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기름종이는 아주 쉽게 떨어질 텐데요.
차라리 동그라미 잔뜩 그려진 다른 템플릿을 사서 작업하기로 하고 이건 그냥 처박아 두었습니다.
결론은 매우 재밌고! 엄청 쉽고! 어디든지 제한없이 적용할 수 있고! 마구 쓰고 싶어지는! 상상력의 한계를 대폭 넓혀주는 참 좋은 녀석입니다. =ㅅ= 가격도 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