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수집을 위해 전주함을 갔다왔습니다. 굉장히 노후화되었지만 그래도 몇년은 더 버틸 것 같더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입니다.
항상 모형으로만 만들던 함선을 직접 들어가서 체험해보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비좁고 달리는 운동조차 엄두를 못내는 곳에서 몇달동안 태평양의 폭풍을 견디며 싸운 미해군 장병들이 참 대단합니다.
목범선을 만들다보면 처음 접했을 때의 모험에 대한 로망이라든지 돛을 펼치고 바닷바람을 받으며 돌아다니는 여유로운 여행과는 완전 거리가 멀은, 오직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생존성만 남겨둔 채 오밀조밀하게 공간을 채워둔 구조를 보며 꿈이 깨지곤 합니다. 유람선은 유람선이고, 상선이나 전함은 쾌적과는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기능만을 위해 설계된 배인 겁니다.
그래도 적어도 증기선같은 동력선, 그리고 철선으로 오면서 군함이라도 수병들의 쾌적함을 어느정도 챙겨주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완전 오산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만들어진 기어링급 전주함 또한 18세기 HMS Victory, 아니 국제선 747 항공기마냥 내부 공간과 방들은 오밀조밀하고 벽도 기자재로 꽉 차 있으며, 복도도 불이 나거나 침몰할 때 바로 도망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꼬불꼬불합니다. 게다가 함내 곳곳에 설치된 미사일 발사대를 보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가 통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포토에칭으로 만들던 난간또한 직접 만져보니 바다로 떨어지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허술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런데 수병들은 매 끼니 밥 먹기 위해 두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운 길목에서 그 허술한 난간을 붙잡고 비가오나 태풍이 부나 줄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수병들의 사기와 전투력을 유지시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듯 합니다. 전주함은 그래도 구축함이라 기본적인 의료시설 같은 것도 있는데, 더 작은 참수리급 고속정 같은 배를 모는 수병들은 더 힘든게 자명하죠.

항상 만들던 배에 사람미가 붙으니 로망만 있던 모형배가 뭔가 다르게 보입니다. 배를 모는 사람들은 15세기나 20세기나 다를바 없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