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제력 없는 프라모델러의 감사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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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12: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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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가족
나는 자제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심하게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꽤 모범적인 초등 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하라는 것만하고 하지말라는것은 절대 안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우이동 동북 국민학교에서 장미원 집까지 세정거장이었는데 같이 하교하는 친구들이 5학년때 쯤 부터 생겼습니다.
이도형, 이해석 이라는 친구들인데 무척 친했습니다.
그 친구들과 제비우스란 게임에 빠져버렸습니다. 사실 해석이가 오락을 아주 잘하는 편이었는데 저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이 그냥 전자오락실에 죽치고 남하는 것 구경하는 것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학교끝나고 친구들이랑 길에서 놀고 오느라고 늦게 오는것이라고 말하고 오락실에 거의 매일 갔습니다. 주산학원도 몇번 땡땡이 친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생때부터 병이 좀 있어서 친구들도 없고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처지였는데 5학년무렵부터 친구들이랑 학교끝나고 하교하면서 논다고 하니까 어머니는 뛰어노는 줄 알고 더 놀고와도 된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우연히 4 19 탑 사거리의 오락실 문열고 나오는 순간..... 바로 앞에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분명히 눈을 마주쳤는데도 모르는척하고 그냥 가셨습니다.
며칠동안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제가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투를 하지 않습니다. 당구도 칠줄 모릅니다. 볼링도 못칩니다. 내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담배도 피지 않습니다.
한번 시작해서 재미를 붙이면 끊을수없는 사람이란걸 알기에 제대로 시작을 안했습니다.
집사람랑 결혼하기전에 집사람이랑 연해할때, 집사람이 게임을 좋아하는걸 알고 잘보이려고 플레이스테이션2를 선물해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제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미쳐버렸지요.
콜오브 듀티 블러드인암스 라는 게임을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내과 레지던드 3년차 가을이었는데 금요일 밤새도록 게임하고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회진돌고 오전근무마치고 돌아와오자마자 낮잠자고 또 아내랑 놀아주지도 않고 게임하더랍니다.... 솔직히 근무도 열심히 안한 것 같습니다.
집사람 말로는 제눈에서 연애할때는 못보던 광기가 보이더랍니다.
저는 참 자제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다시 제정신 차리고 게임씨디를 송곳으로 긁어버리고 게임을 때려쳤습니다.(물론 몇번 미련이 남아 씨디를 넣어보긴 했습니다. 안돌아가더군요) 그리고 전문의 따면 플라모델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서 요즘입니다.
일주일에 3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만 플라모델을 합니다.
월요일인 직장일이 많고 화요일은 헬스장 가야만하고 목요일은 어려운 환자를 많이 만납니다. 금요일은 좀 그냥 많이 지쳐서 기도회 갔다오고 쉬고 토요일 오후 일요일 플라모델합니다.
아직도 재밌습니다. 전자오락보다 재밌습니다.
중독이라면 중독인데 별로 빠져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별로 자제하고싶지 않습니다.
MMZONE 이 없었다면 아마 이렇게 오래 재밌게 플라모델 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세상에서 별 낙을 못찾았을 것 같습니다.
사이트가 홈지기 님이 수고하셨더니 더 좋아지셨네요.
고맙습니다.
염치 없지만 이 사이트에 오시는 많은 분들과 오래오래 즐겁게 신세 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