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물건 새주인 찾아 보낸 뒤
게시판 > 자유 게시판
2025-06-03 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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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선
퇴직후 원없이 모형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목 상태가 안좋아졌습니다. 직딩 시절 두 눈이 짓무르게 모니터 쳐다 보느라 거북목이었는데, 한 2년 잔부품 다듬고 붙이고, 거기에 피규어 눈깔 그려 놓는다 소란 피우다 그랬는지 목이 영 까탈스럽게 됐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모형 접고 한 3~4년 지났나 봅니다. 재개할 날은 영 기약 없는데, 먼지만 쌓이는 부스, 콤프, 바람붓, 거기에 비싼 돈 들여 사놓고 개봉도 못해본 오만 도료들... 저거 내돈내산인데 넘 주자니 아깝고 그냥 끼고 있자니 영 몹쓸 물건 될 것 같고 그간 영 심란했습니다. 해서 이곳 게시판에 새임자 찾는다고 시원찮은 글줄 올렸는데 대꺽 문자가 왔습니다. 아이랑 함께 만들고 싶다고. 오케바리하며 어찌어찌 색칠용품 털어서 보냈습니다. 며느리 등 떠밀어 개가시킨 시아버지 심정이랄까 심사가 좀 복잡하네요. 확실한 건 후련하다는 겁니다. 옛날 사문 법정이 애지중지하던 난초화분을 새주인 찾아 보낸 뒤 시원하다고 했던 그 심정에 모처럼 공감해보는 오후입니다. 우리 삶은 맹목의 애착과 떠나보냄 사이를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시계부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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