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 기술인가, 미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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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6 16:13:34, 읽음: 2165
doug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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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국 포크스톤, 유로밀리테어 심사현장;
 . 
매년 하는 일이지만 항상 곤혹스러운 심사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서, 이제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베스트 오브 쇼를 선정 할 차례다. 나와 독일에서 온 베른하르트가 심사를 맡았던 밀리터리 디오라마 부문의 금메달 수상작 중에서 추천 작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마디로 “없다” 고 딱 잘라 놓은 터이니 어느 작품을 밀어주기 위해 내 의견을 열심히 개진할 필요도 없고, 그야말로 이제부터는 내가 보기에 좋은 작품에 손만 들어주면 그만이다.

몇 점의 추천 작 들이 결선 테이블로 날라져 온다. 에이드리언 홉우드 의 신장 3.5 Cm 짜리 인형 한 개로부터 스위스에서 온 매리온 에펜스버거 부부의, 엔 볼레인의 사형 장면을 재현한 비네트등 10점 정도가 후보에 올랐지만 역시 올해도 처음 보는 신인은 없고, 누구나 알고있는 이른바 ‘빅 네임’ 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심사위원 이기도 하니 (물론 자신이 출품한 부문은 심사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 제 작품이 결선에 오른 사람들은 눈치껏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가는 것 역시  이곳의 불문율 일뿐 아니라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익숙한 몸짓이다.

이런저런 토론을 거치면서 6-7 점의 후보작이 비교적 빨리 걸러져 나가고,3-4점이  남았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완전자작의 구식 군용트럭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인형이다. 지금부터는 모두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고 심각해지는 순간... 좀처럼 먼저 입을 떼는 사람이 없다. 바로 그때 활달한 분위기 메이커, 대회장 켄 존스 씨가 한마디를 날린다.

“여기가 미국 같으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데 말이야” 

그의 손가락 끝은 트럭을 가리키고 있고, 모두 와르르 웃는다.   

장난스럽지만 존스씨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유럽인 심사위원들 모두가 느끼고 있는 우월감이랄까, 자부심 이라고 할까... 그런 공감대를 잘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갈등을 겪어온 문제인 동시에 많은 모델러 들이 항상 부딪히면서도 잘 의식하지 못하였던, 바로 “ 모형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이민초기에는 ‘모형선진국’에 왔으니 견문도 넓힐 겸, 군소 지방대회까지 전 미주에서 열리는 모든 콘테스트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가는 곳 마다 마주치게 되는 작품이 1/6 스케일이던가, 엄청 덩치 큰 완전자작의 M2 브래들리 장갑차였다.  전체가 알루미늄판 용접으로 만들어 진데다 바퀴들은 선반 가공, 캐터필러는 한 토막, 한 토막 주물성형, 내부 완전재현, 하여간 내가 보기에도 그건 정말 ‘물건’ 이었고, 우선 그 덩치에서 오는 포스만 해도 대단해서 그 주변에 있는 프라모델 키트로 만든 작품들이 정말 어린애 장난감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는데, 아마 그 한해동안 그 작품이 미주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베스트 오브 쇼를 휩쓸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여기에 셔먼 전차까지 더 보태졌는데, 하여간 그걸 보면서 그 동안 막연히 가져왔던 의문이 또렷하게 가닥이 잡혀오는 느낌이었다. “ 분명히 이건 아니다” 하는... 그리고 아주 옛날, 모형 점 진열장에 놓인 타미야 제 오토바이를 보고 어떤 여자 손님이  “ 이거 기름 넣으면 가나요?” 라고 묻던 기억도 오버랩 되어왔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모형은 기술( Technology)과 미술( Art)의 결합체다. 

모든 모형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실물의 재현성, 즉 형태와 치수를 정확히 뽑는 일은 당연히 기술의 영역이고, 우리가 즐기는 프라모델 역시 그 출발점인 키트 자체는 미술적 감각이 거의 끼어 들 여지가 없는 기술공업의 산물이다. 따라서 실물을 정확하게 오류 없이 재현할수록, 정밀할수록, 좋은 모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이 논리대로 한다면 앞서 말한  대형 브래들리 자작모형은 축척을 워낙 작게 줄이다 보니 아무래도 디테일이 많이 생략되고  형태도 꽤 왜곡 되었을 뿐 아니라, 재료부터가 값싼 플라스틱으로 된 키트로 만든 작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궁극의 모형임에 틀림없고  제작기술에서도  ‘ 이 모든 기계작업을 내가 직접 했다’ 는 그 제작자의  기술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바로 그 논리에 따라 살펴 본다면 그 대단한 모형보다 더  정확하고 완벽한 모형이 딱 하나 있으니 , 그건 바로  실물의 브래들리 장갑차다. 그 사람이 아무리 기계 다루는 솜씨가 좋고 “가능한 한 실물의 공법에 따라” 만들었다고 한들,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을 수야 있겠는가? 

좀 억지스런 궤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의 요점은 간단하다. 실물은 실물이고, 모형은 모형이란 얘기다. 그리고 모형은 단지 실물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그 어떤 것이 플러스된,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실물과 아무 관계없는 별개의 미술작품이라는  뜻이다.

물론 모형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실물을 대신하여 전시목적으로 제작된 건축모형이나 공업모형 이라면 위에서 말한 브래들리 같은 것은 제 용도에 더없이 적합하게 잘 만들어진 모형일 테지만 , 최소한 프라모델 콘테스트에 출품되어 ‘ 손바닥만 하고 값싼’ 다른 출품작들을 ‘기 죽이는’ 것은  당치  않다는 얘기다.  

켄 존스 씨의 말은 그런 작품에 큰 상을 연거푸 안겨줌으로써 예술모형과 공업모형의 경계조차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 미국의 아마추어 모델러들을 조소한 것이며, 당연히 유로밀리테어 같은 예술모형 콘테스트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자신의 견해를 심사위원들 에게 암시한 것일 터이다.

물론 대상 후보에 까지 올랐던 그 트럭은 앞서 말한 브래들리와는 좀 다른 경우로, 그것이 무가치 하다거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모형이 가진 두 가지 측면 중에서 기술쪽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는 미국  모델러들의 성향을 지적한 것일 터이다.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왜 유럽처럼 모형역사가 오래된 나라 일수록 히스토리컬 피겨 라고 불리는 인형이 실세대접(?)을 누리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저변이 넓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역시 프라모델 키트다) . 그리고 미국, 아시아처럼 모형역사가 짧을수록 전차나 비행기 같은 기계 물이 주류를 이루는지도 쉽게 이해가 간다.

이것은 기호에 따른 파벌의식(?) 의 문제가 아니라 “모형은 미술(예술)” 이라는 명확한 전제에서 볼 때 인형이 가장 그런 본질에 충실하고, 전차와 같은 기계 물은 그런 시각미술   외적인, 기술적 요소가 태생적으로 많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럼 당신은 어느쪽?

하여간 인형이나 공업모형은 그렇다 치고, 우리 한국에서는 전차 같은 밀리터리 류가 실세이며 ‘정통’이라고 말들을 할뿐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MMZ 회원들 대부분의 기호도 단연 이쪽이니 화제의 범위를 프라모델, 그 중에서도 밀리터리로  한정해보자.

우리 한국 모델러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작업에 임하는 성향은 어느쪽인가?    
 
측정해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요즘 전 세계에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애프터마켓 제품(개라지 제품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아듣기 쉽겠다) 중에서 내가 산 물건이 어떤 것 들인지 한번 살펴 보시라.  개라지 제품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그 모든 것은 딱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첫 째는 기술적인 제품, 두 번째가 미술적인 제품이다.

에칭파트를 좋아하고 알루미늄제 포신, 레진제 실내 부품 등을 즐겨 사 모은다면 당신은 다분히 기술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타미야의 어느 전차가 포신이 0.5 mm 굵다든가 포탑이 1mm 높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키트는 쓰레기라고 생각하거나, 비싼 값을 주더라도 수정된 별매제품을 꼭 사고야 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의 미술적인 제품이란 간단히 말해서 ‘기계가 아닌 것, 다시 말해 도면으로 그릴수 없는 물건’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많은 별매품 레진 인형과 탱크 외부에 매다는 모포뭉치, 주름살투성이의 포 방패 커버, 레진 제 트럭 후드등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드래곤 인형은 상체가 너무 커서 비례가 안 맞다”는 정도는 이런 미술적 측면이 강한 사람의 기본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고,  “ 만들어놓고 보면 동세가 박스그림처럼 자연스럽지가 않고 뻣뻣해 보인다’ 라고 하는 수준이라면 이미 눈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그 옛날 벨린덴 제품부터 그 많은 레진 인형 제품을 두루 섭렵 했을 것이고, 한 개에 만원이 넘는 값비싼 레진 인형 이라고 해서 그 품질이 모두 똑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전자의 유형이 키트를 잘라내고, 프라판으로 새로 만들어 넣는 등의 조립작업에 큰 시간과 공을 들이는데 반해, 이 두 번째 유형은 “ 웬만한 건 그냥 넘어가고” 그 대신에 색칠과 웨더링, 실감나는 베이스의 그라운드 워크작업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럼 이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가치 있고 높은 경지란 말인가?

정답은 없다.

그야말로 각자의 기호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그럼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해답은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개라지 제품을 보면 간단히 나온다.  전자, 즉 “기술적인’ 제품이 몇 갑절 더 많고,  품질 쪽에서도 더 월등하다. 일본의 어느 메이커에선가 만든 MG34 기관총신은 1mm도 안 되는 지름에 총신과 방열 자켓이 분리되어있고, 총구는 물론  자켓의 방열구까지  촘촘히 뚫려있어 그걸 보는 순간 긴 탄식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에 반해 실감나고 자연스러운 모포뭉치는 좀처럼 발견하기가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후자는 기계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MG34는 ‘ 실물을 충실하게 복사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완벽하고, 이건 요즘의 발달한 정밀 기계공업의 수준에서 볼 때 그야말로 장난이다. 하지만 인형이나 모포뭉치는 치수화 할 수 없으니 기계작업을 할 수가 없고, 결국 원형 제작자의 감각과 솜씨가 바로 제품에 투영될 수 밖에 없다.  

이것으로 정말 모형을 만들어본 경험이 일천한 중국 메이커들이 초 정밀의 황동가공 제품, 에칭파트들을 이전보다 훨씬 싼값에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그 품질 역시 훌륭한데 비해서, 다른 중국 메이커의 키트 안에 포함된 배낭이 마치 무슨 기계부품처럼 보이고 모포뭉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플라스틱 덩어리, 인형은 돌 하루방처럼  투박해 보이는 이유도  간단히 설명이 된다 (키트 자체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차체가 1mm 길다든가 포탑이 작다.. 등등의 경우와는 달리 이런 것은 문제를 한눈에 알아 볼만큼 안목 있는 소비자의 숫자가 훨씬 적다는 것이 메이커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나 할까?     

결국 이 모든 것을 짧게 정리 한다면 한쪽은 “틀리지만 않으면 잘 만든 것” 인데 비해 다른 하나는 “정말 잘하는데 있어서 끝이 없고 측정 할 수도 없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쪽에 더 오래, 더 깊이 파 들어가 볼 만한 여지가 남아있는지는 여러분이 판단할 일이다.

끝으로 한마디 사족을 더 붙인다면, 오늘부터라도 초점을 후자 쪽에 맞추어 보면 모형재료 구입비 지출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란 점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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