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퍼드 페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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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18:38:55, 읽음: 6453
doug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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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델러 중에서 세퍼드 페인의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이다. 30여 년 전에 그 유명한 저서 How to build dioramas를 통해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단순한 손장난이나 취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형, 특히 디오라마의 이론적 기틀을 세우고 그것이 예술이 될 수 도 있음을 입증한 선구자로 모두들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이 대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그보다 좀더 이전이다.

 

지금 40대 중반 이상의 모델러들 중에는 70년대 초반, 모노그람의 전차와 비행기 키트 안에 들어있던 4페이지짜리 디오라마 제작 가이드 리플렛을 기억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몇쪽의 찌라시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그 이전에는 상상도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고, 그때 그것이 오늘 나의 인생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여년 전, 그 존경하던 분을 처음 뵈온 자리에서 나의 첫마디도 바로 그것이었고 (여기에 대한 그 양반의 대답은 그래서 잘 된 것도 있고 못 된 것도 있겠지. 네가 모형 만들지 않았더라면 뭐가 되었을지 누가 알겠느냐?” 였다), 찌라시의 추억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내 또래의, 거의 전세계의 모든 모델러들이 공유한 소중한 기억 이란 것 도 알게 되었다.

 

하여간 저 멀리 다른 천체에 살고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던 그 양반이 가끔 토론토에 오실 일이 있으면 우리집에 들러 불고기와 김밥을 맛있게 들고 가시게 된 지금도 선생은 여전히 나의 우상이고, “, 남 먼저 시작했을 뿐이지 실력 그 자체야 그 사람보다 월등한 사람들, 요즘 쌔고 지라는 일부의 싸가지 없는촌평을 부분적으로나마 긍정하게 된 지금에도 이 양반은 여전히 나의 가장 존경스런 스승이다.

 

우연히 묵은 책을 뒤적이다 보니 유명한 모델러인 Joe porter씨가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게 우리 MMZ회원들에게 무척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번역해 올리기로 했다.

 

소개된 원전이 인형 전문지이므로 대화의 포커스가 다분히 인형에 맞추어져 있지만, 선생의 생각, 비평, 전망 등 은 다른 장르의 모형에 그대로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판권문제는…… 물론 허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이 기사를 MMZ에서 읽었다는 말씀들은 하지 마시고, 아무개가 번역해 올렸다라는 말은 더 더욱 하지 마시고…… 

 

1946 7 29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세퍼드 페인은 전후 독일에서 태어난 첫 미국시민 이었다. (역자 주: 부친이 독일주둔 군인이었다고 함)

양친과 함께 곧 귀국한 그는 보스턴, 뉴 햄프셔와 메사추세스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수년을 영국 런던에서 살기도 했다.1965- 1967년에는 육군사병으로서 독일에서 근무했고 1971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70년대 내내 메탈인형 메이커 Valiant를 공동운영하며 그 원형을 제작했고, 모노그람 키트에 포함된 디오라마 제작 리플렛으로 명성을 얻었다.

 

1972년에 전미 미니추어 작가협회 추천으로 초대 그랜드 마스터의 명예가 헌정 되었고 1977년에는 일리노이 미니추어 작가협회(MMSI)의 초대 시카고 메달 보유자가 되었다. Klambach출판사에서 발행된 독보적인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전 세계 모델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있는 그의 현재 직업은 주로 나폴레옹 시대물로 전문화된 군장수집, 매매와 함께 해당 분야의 박물관, 전시관 등의 컨설턴트다.

 

) 처음으로 인형에 매료된 것이 언제 입니까?

 

) 내가 기억 할 수 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작은 것이 무조건 좋았어. 어릴 때부터 다른 친구들처럼 모형도 많이 만들었고(역자 주: 40, 50년대에도 유럽과 미국에는 프라모델이 존재했다), 그 한편으로 항상 군사역사에 흥미가 있었어. 결국 그 두 가지의 결합이 내 인생인 셈이야.

 

) 지난 30년 동안 선구자적 입장에서 모형계의 발전을 지켜봐 오셨을 텐데, 최근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향 같은 게 있는지?

 

) 테크닉 면에서는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야. 오늘날 수많은 인형 페인터들이 보여주고 있는 귀신 같은 솜씨는 30년이 아니라 불과 10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델러들의 창의성은 이런 테크닉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어느 전시회를 가더라도 잘 색칠된 나폴레옹 시대의 검 기병들이 수두룩 하지만, 문제는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야.

말의 오른쪽 다리가 허공에 들려있는가, 혹은 그 반대편 다리가 들려 있는가 하는 게 다를 뿐아니면 그저 군복 색갈이 조금 다르든가그저 하나같이 스텐드 위의 인형일 뿐 이야.

뭔가 재미있는 요소가 없다면 피겨(figure)란 게 아무리 잘 색칠해도 그저 따분한 단순작업이 되고 말지. 이름있는 몇몇 선두그룹의 작가들이 그 테크닉만큼이나 화려한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참 유감스러워.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모형 메이커들이 전시관 부스가 오히려 더 볼만하다는 사실은 참 서글픈 일이야.

신제품이 발표되는 모형 쇼에 한번 가 봐. 메이커들의 화려한 부스에 놓인 전시물 들은   지금 우리 모형 미술계의 현주소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어. 메이커들로 하여금 그런 제품을 만들어 내도록 자극한, 바로 그 모델러들이 왜 상업제품의 품질혁신 속도 만큼의 비약적인 작품적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거지?

창의성과 상상력……  테크닉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 많은 외국 모델러들이 미국의 몇몇 유명한 인형 페인터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테크닉에 경탄하곤 하는데, 기억 나는 몇몇 이름을 말해주시면……

 

) 그거내가 깜박 잊고 이름 빼먹은 친구가 있으면 서운하다 할 테니 좀 어려운데…… (웃음)  그냥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녀석들로는 그랙 디프랑코, 빌 호란, 덕 코헨 등등이 있군. 그 밖에도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지. 그 중 하나가 로이 앤더슨인데,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여전히 살아서 자기일 왕성하게 하고 있어. 원래 타임 지의 표지 일러스트를 그리던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전문 미술교육의 바탕을 인형색칠에 도입한, 드문 초기작가중의 한명이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별로 소장하고 있지 않은 나도 로이의 작품은 아직도 두개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데, 25년 전에 모형계를 떠난 그는 지금 전업화가가 되어 그의 서부개척시대 배경 회화는 5–10만 불 이상으로 거래 되고 있어

 

) 모형 (역자 주: 여기서는 물론 인형을 말한다) 중에서 가장 도전해 볼만한 분야가 있다면 그게 뭘까요?

 

) 개인적으로 쉐도우 박스라고 생각해. 색칠기술, 아이디어, 공간구성, 조명효과.. 여러 가지 감각이 종합적으로 필요하고, 여기 비하면 다른 것은 그냥 단순 작업일 뿐이지.

 

) 보다 근본적으로, 인형은 예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럼,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어. 이건 분명히 단지 공예라고 부르는 그 이상이야. 무대에 기어 올라가 그랜드피아노에 오줌 싸는 것 보다는 분명히 예술이지.(역자 주:이해하기 힘든, 소위 행위예술에 대한 선생의 소감?)

 

) 최근에 볼 수 있는 인형작품들에 어떤 트렌드가 있다면, 아크릴컬러의 사용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 만일 내가 아직도 인형 만든다면 아마 그거 쓰고 있을 거야. 몇 년 전 까지도 블렌딩이 전혀 안 되는 등의 문제가 많았는데, 요즘 나오는 거 보니까 참 좋더라고.  단점들이 거의 해결된 거 같아. 건조도 빠르고 붓 자국도 안 남고

 

) 피겨미술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낙관적 인가요?

 

) 어떤 면에선 낙관적 그 이상이야. 모두들 손으로 만드는 모든 취미, 공예가 다 죽어간다라고 들 하지만 유럽에선 그 반대인걸? 원래부터 유럽에 비한다면 미국은 수공예의 전통이 취약하지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인구가 거의 없는 늙은이 들의 취미가 되어간다는 얘기도 그래. 내가 한창 모형 만들 때 그 주류가 20대고 심지어 10후반도 꽤 많았던 건 사실이야. 그러던 게 지금은 가장 젊은 축이 30대 중반 이 되어있으니 그런 말 할만도 하지.

하지만 나는 그걸 꼭 비관적으로 보지않아. 목제범선 분야를 보라고. 그건 노인취미라는 딱지가 붙은 지 더 오래 되었어. 수십만 개의 부품을 갈고 다듬어야 하는 그 일은 정말 시간소모의 대표적인 취미이고, 그래서 은퇴한 노인들이 아니면 거의 즐기기 어려운 점이 실제로 많아. 거기 비하면 인형작업의 시간 소모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이게 노인 취미로 낙착 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 실제로 스페인을 좀 보라고. 거긴 요즘 잘 나가는 대표적인 작가 들이 모두 20, 30대야.  나는 이게 단지 순환주기라고 생각해. 한때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두 영국, 미국, 프랑스인이었지만 지금은 스페인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이고……

세상 모든 건 돌고 도는 법이고, 앞으로도 또 다른 변화를 보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주 죽는 법은 없어.

게다가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

흔히들 요즘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역사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고 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역사, 자료집 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을 좀 보라고. 게다가 히스토리 채널은? 아마추어 역사 연구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왕성한 이벤트나 프로젝트도 그 어느 때보다 많고…… 이처럼 지적욕구가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 모형의 미래에도 좋은 일이지.

모형도 결국 역사연구의 연장 이니까.

 

) 수년 전에 줄곧 나 혼자 허공에다 대고 디오라마란 이래야 한다고 고함질러 온 꼴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한번 설명을……

 

) 항상 하는 말이지만, 디오라마란 곧 스토리 그 자체야.

그게 작든, 크든 간에 그런데 아직도 그 간단한걸 제대로 깨우친 놈들이 거의 없다는 거야.  모형 쇼에 가보면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전차 옆에 역시 잘 만든 인형 서너 개가 둘러서 있는 디오라마, 수도 없이 많아.

하지만 그건 디오라마가 아니야. 그냥 잘 만든 전차와 인형일 뿐이지. 스토리가 없으니까…… 거기서 뭔가가 벌어지고있어야 그게 디오라마 야.

대부분의 모델러들은 일단 제품을 사 들고 나서 그걸 디오라마에 등장 시키기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짜기 시작하지.  나는 그 반대야. 먼저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스토리에 어울리는 제품을 찾지.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만들어라……  이게 정답이야.

그렇게 잘 만들어진 인형 한 개가 인형 30명이 지도들고 빙 둘러 서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함축 할 수도 있어.

바로 그게 누가 비평을 부탁해 올 때 내가 항상 2장 다시 읽어라는 말 한마디밖에 안 하는 이유야. (역자 주: 본인의 저서, How to build dioramas의 제 2장은 아이디어의 구상과 전개에 대한 서술이다)

아무리 각개의 구성요소 들이 잘 만들어 졌어도 스토리 구상과 전개가 처음부터 약한 디오라마는 아무리 잘 쳐줘도 그저 2류 일 뿐이야.

거듭 말하지만, 관객들이 거기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깨닫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디오라마는 디오라마가 아니란 얘기야.

조금 전에 나한테 모형이 예술이냐고 물었지?  예술이란 하나의 소통수단이야. 내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의사를 소통하는 것 작품을 완성하여 전시한다는 것은 곧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행위인데, 그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하품을 한다…… 그건 소통에 실패한 거야. 디오라마의 정의에서 이것 보다 중요한 핵심은 없어.

 

) 요즘도 모형 만드세요?

 

) 절반쯤 은퇴한 상태라고 대답해야 정확한 답이 되겠군. 마지막 만든 게 2년 전 이던가?  지금도 정말 만들어 보고싶은 프로젝트가 떠 오르거나, 아니면 돈을 삽으로 퍼 담을 만큼 준다면 언제라도 다시 만들 참이야.   많은 후배들이 전업 모형작가가 되는 길을 묻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는 한번도 이걸 생업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 그냥 취미로 이걸 즐겼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매달 쌓이는 청구서는 그때그때 갚아 나갈 수 있었고 내가 평생 이것으로 벌어들인 돈이 얼마나 되는가 계산해 본적도 없어. 그게 내가 아직도 전업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야.(역자 주:  참고! 이 양반은 평생 혼자 살아온 독신이다)

 

) 그 많은 디오라마, 쉐도우 박스가 모두 돈 많이 받고 만든 주문품 아니었던가요?

 

) 사람들은 그걸 주문이라고 들 하지만 나는 그걸 제안이라고 불러 .그들의 제안이 나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면 응했고, 그 과정이 행복했어. 한번도 싫은걸 돈 때문에 만든 적은 없어. 돈 때문에 똑 같은걸 두 번, 세 번 반복해 만든 적도 없고…… 그래서 모든 내 작품의 소장자들은 그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게 만족스럽고……  그냥 그렇게 평생 즐겼을 뿐이야.

 

) 한때 직접 원형제작도 하고 생산도 하셨던 걸로 아는데…… 요즘 메이커들 중에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이 있습니까?

 

) 메이커 입장에선 세상에서 제일 별 볼일 없는 소비자가 바로 나라면 답이 될까?  제품을 사본지가 워낙 오래 전 이거든. 모형점에서도 내가 제일 나쁜 손님이고,그저 페인트 몇 병, 나무조각이나 황동선 몇 가닥 서푼어치를 팔아주고는 6개월 이상 사라져서 코빼기도 안 보이니까 고객들이 다 나 같아선 살아남을 모형점이 별로 없지?

모형점이야 오늘 한아름 새 키트를 사가고, 다음주에 또 나타나 뭐 새로 나온 게 없나 두리번거리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는 건데 말이야

 

) 장차 특별한 계획 있으십니까?

 

) 그냥 군장 품 콜렉션이 지금 내 일이야. 여기(시카고) 살기 시작 할 때부터 시작한 이 사업이 아직은 재미있어. 가끔씩 모형 쇼 가는 것, 이 바닥에서 알게 된 많은 친구들…… 다 좋지. 그 좋은 친구들과 교류를 유지 하는 데는 쇼에 자주 찾아 다니는 것 이상이 없고. 

하지만 모형은 더 이상 거의 만들지 않아. 당분간 이런 생활이 바뀔 것 같지도 않고. 혹시 앞으로 뭔가 새로 내 관심을 끄는 일이 발견되면 그걸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내 에너지를 쏟아 부을 일로서 이것이면 충분해. 이것조차 싫증이 나면글쎄, 그걸 누가 알겠어?

 

) MMSI 쇼에는 언제부터 관여 하셨습니까?

 

) 올해로 거기 회원이 된지 35년 이야.  (역자 주: 이 인터뷰 시점이 2002. 이 양반, 지금은 MMSI 고문이다)

 

) 거기서 심사를 맡으신 건 언제부터 입니까?

 

) 시작 할 때부터 이니까 1975년 이로군. 그 후로 1990년 까지 15년간 대회 위원장을 맡았지만 그 대회에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젊은 피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뒀어.  사실 MMSI MFCA에 심사를 맡았던 것은 이 분야가 좀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더 공정하고 책임성 있는 판정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였어. 그 무렵엔 사실 납득 할 수 없는   심사기준이 많았거든. 내가 시카고 쇼의 심사를 맡으면서부터 오픈 시스템을 적용하기 시작했지. 이건 그때까지 모든 대회가 그냥 1, 2, 3등으로 입상자를 선발하던데 비해 상당한 진보였다고 지금도 믿고있어.

 

)그러니까, 오픈 시스템을 처음 만든 게 선생님이란 말씀이죠?

 

) 그럼, 1975년부터지.  물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기본 골격은 그때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어. 간단히 말해 상의 개수를 미리 정해놓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각 출품작의 수준을 절대평가 하여 좋은 작품이 많기만 하다면 금메달을 여러 개 줄 수도 있다는 게 그 핵심이야.

이건 금메달의 남발이 아니라 그만큼 더 공정성을 기하자는 것으로, 예전 방식으로는 열 개의 정말 뛰어난 작품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그 중 상 받을 단 세 점 을 추려 내야하고, 나머지 일곱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반해, 출품자가 거의 없거나 전체적인 출품작의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부문에선 이쪽의 낙선 작 보다 훨씬 더 못한 작품이 금메달을 받게 되는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실제로 인기있고 경쟁이 치열한 부문의 낙선 작이 다른 열두 개 부문의 당선작 보다 뛰어난 경우가 허다했어. 그래서 우리가 처음으로 그 방식을 개선한 것이고, 쉽지않은 일이었지만 차차 정착이 되자 다른 많은 대회들도 이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어.  그럼에도 아직도 규모 있고 잘 알려진 몇몇 대회들은 여전히 낡은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좋은 작품들이 묻혀버리고 있는 게 안타까워.

 

) 대회의 출품 부문이나 심사방식에 또 다른 개선이 필요하다고는 안 느끼십니까? 자작 인형이나 차량의 스크래치 빌딩 등은 좀더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요?

 

) 스크래치 빌딩 이라고 했나? 그런데 뭐가 스크래치 빌딩이지?  , 생각해 보자고.

수년 전에 쉐도우박스를 만들 때 히스토릭스 제품의 포도주 통을 절반으로 잘라 물 양동이로 쓴 적이 있어. 나머지 부분은 모두들 흔히 말하는 스크래치 빌딩이고…… 이 경우에 이 작품 전체를 스크래치 빌딩으로 봐줘야 해? 아니면 기성제품의 단순개조인가?  물 양동이 하나 때문에? (웃음)

이게 바로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질문이고, 대답은 이거야.

 스크래치 빌딩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충분히  좋으냐 하는 것 이다

보아서 좋으면 상타는 거고, 상탄 건 잘 만들었단 뜻이지 또 다른 구분이 왜 필요한가?  오픈 시스템 에서는 최소한 세 사람의 심판이 각기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점수를 메기고 그 합산에 따라 메달이 결정되는데, 모두 관점도 다르고 관심도 다르므로 비교적 공정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할 수 있어.

 

) 옛날 모노그람 키트에 들어있던  디오라마 제작 가이드 리플렛은 거의 전 세대에 걸친 모델러들에게 소중한 기억 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맡게 되셨는지 회고를 좀……

 

) 사실 그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만들어본 탱크라고는 하나 아니면 두 개가 전부였어.  기본적으로 나는 인형 페인터 였거든. 하지만 그일 하면서 차량도 인형이상으로 재미있고 깊이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동네 모형점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본 모노그램 의 누군가가 자기네 제품에 좀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연락해 왔는데, 들어보니 참 좋더군.   

문제는 너무 바쁜 일정이었어. 거기 나온 디오라마들, 모두 일주일 이상 걸린 게 없어.     제공된 키트라는 게 대부분 급히 뽑아진 시험 사출 물로, 그날 사출공장의 스케줄에 따라 그랜트 탱크는 고운 하늘색으로, 4호 전차는 오렌지 색으로…… 물론 설명서커녕 런너에 제품번호도 안 새겨진걸 그냥 눈짐작으로 조립 해가며.  그전까진 비행기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복잡한 내부부품까지 빼곡한 모노그람의 비행기를 만들면서 그때 공부 많이 해야 했어.

 

 

지금도 많은 모델러들이 나를 대단한 항공기 전문가로 생각해서 어떤 쇼에 가면 JG57234-J에 대해 묻곤 하는데, 사실은 나, 그런 비행기가 있는지도 몰라. 제트긴지, 프로펠러기 인지도 물론 모르고  그때 만들면서 공부했던   B-17 이나 B-24 정도나 조금 안다고 할까?

사람들은 그렇게 애써 만든 작품을 어떻게 돈 받고 팔 수 있느냐고 묻곤 하는데, 내게 있어서 진정한 즐거움은 만드는 그 과정 자체이지 소유가 아니거든. 그래서 완성품   자체에는 별로 집착이 없고, 하나가 끝날 무렵에 내 관심은 이미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 있는 식이었지.

모노그람에서 B-17 발매될 때가 생각 나는군. 그 사람들, 처음으로 볼륨도 크고 투자도 많이 된 4발 기체 키트를 발매하면서 무척 신경이 곤두서 있었어.  특히 조립하고 나면 하나도 안 보이는 내부재현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는 게   옳은 방향인가 하는 얘기가 많았어.  그래서 내가 말해줬어

당신들이 팔고있는 것은 모형키트 그 자체가 아니라 모형을 만든다는 경험이다. 이걸 만드는 소비자들은 이 비행기 안에 조종석은 어디이며, 뭐가 어디에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설령 완성 후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모든 것이 제 자리에들어차 있음을 알고있고, 만족해 한다.  다시 말해 당신들은 모형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실물비행기의 이미지- 바로 그것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 후로도 내가 메이커들에 해주는 말은 항상 이거야.

 무엇보다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해라

 

)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 ? 아마 기억 될 일 없을 테니 신경 안 써.  

 

) 죄송하지만 수긍할 수 없는 답변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든 오래 기억 될 테니까요.

 

) 그거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싶어할지, 혹은 기억 해줄지그냥 내 손으로 해 놓은 것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혹시라도 기억해 준다면, 디오라마나 다른 어떤 것을 만든 사람이란 것 보다는 오픈 시스템의 심사방식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어.        

 

) 혹시 또 다른 저서를 출간하실 계획은 없는지?

 

) 아니, 하고싶은 말은 이미 다 했으니 더 쓸 말 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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